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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님~행진곡’ 논란과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노래 한 곡이 정국을 뒤흔들었습니다. 물론, ‘임을 위한 행진곡’ 얘기입니다. 같은 시간 소설 한 편이 한국 문단과 세계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16일(현지시간) 영국에서 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ㆍ발표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입니다.

국내외에서 같은 시간 전해진 소식을 듣고, 노래 한 곡ㆍ소설 한 편의 힘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과 함께 떠오른 작품이 있었습니다. 한강의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였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5ㆍ18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오랜 동안 갖고 있었던 기억을 불러내 정면으로 마주하고 글을 써간 소설입니다. 자신이 쓴 작품에 의미의 경중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한강이라는 작가의세계에서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큰 뜻과 무게감을 갖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5ㆍ18 광주항쟁 36주년 기념일을 하루 이틀 앞두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더욱 의미심장할 것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5ㆍ18 당시 도청에 남아있다가 진압군에 희생된 소년의 이야기를,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소년을 알았던 다양한 이들의 시점과 목소리로 그려냈습니다.

우리 역사에 ‘미결’(未決)로 남은 죽음을, 죽음의 의미를 묻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용산참사같은 사건이 어린 시절의기억, 원형적 공포 체험을 불러냈다고 했습니다. 그의 뇌리에 또 다시 떠오른 것은 소녀 시절 어른들 몰래 펴보았던 광주항쟁 사진집 속 처참한 희생자들의 모습과, 어른들이 나누던 불길한 소문들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한 소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한강은 광주에서 태어나 5ㆍ18 직전 서울로 올라와 자랐는데, 광주 옛 집을 샀던 이의 열대여섯살된 아들이 희생됐다는 이야기를 당시 어른들의 숨죽였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 희미한 옛 기억을 좇고 기록과 자료를 찾아 소설로 지어냈습니다.

지난 2014년 소설을 발표하고 만난 한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1년 펴낸 전작 ‘희랍어시간’은 시력 잃은 남자와 청각 잃은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저는 인간의 가장 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면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글이었죠. 그 다음엔 인간의 가장 밝고 눈부신 삶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제목까지 지어놓았습니다. 하지만 1년 이상을 뒤척였습니다. 왜 안 됐을까 제 내면을 들여다 보았죠. 제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공포를 마주했습니다. 1980년의 광주의 기억이었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에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할까? 이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은 결코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땅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아름답기 위해서는 먼저 참혹해야 했던 것입니다. 광주항쟁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이 땅에는 또 다른 참혹한 죽음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대형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언제는 부정한 권력의 폭력이었고, 어느 땐 자연의 무자비한 복수였으며, 때로는 탐욕의 무참한 결과였습니다. 세월호참사가 그랬습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이들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죽음들은 ‘미결’로 남아있습니다. 당장 국회에서는 세월호특별법개정안과 가습기살균제 피해 대책 관련 법안들이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가상의 영국 인문학자의 글을 빌어 이렇게 말합니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강은 자신의 소설을 두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우리 사회는 ‘미결의 죽음’을, 노래 한 곡으로 마주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합창이냐 제창이냐. 어찌 보면 우스운 해프닝같은 논란으로도 비칩니다. 앉아서 공연으로 보는 합창이면 어떻고, 다함께 일어서서 부르는제창이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합창이냐 제창이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며 결국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에 관해서라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6년전의 죽음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결’입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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