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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수산, 27년만에 ‘군함도’완성, “과거의 진실에 눈 떠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소설가 한수산(70)이 27년간 붙들고 있었던 소설을 마침내 완성했다. 최근 일본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 하시마섬에 징용돼 참혹한 삶을 살아간 징용공들의 삶을 그린 ‘군함도’(창비)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창작에 회의를 느끼고 칩거중이었던 그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1981년 5월, 그 유명한 ‘한수산 필화사건’이 발생한다. 한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 신군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돼 고초를 겪은 사건이다. 작가는 제주도에서 요양차 생활하다가 88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 되자 창작에 회의를 느끼고 일본으로 떠난다.

그해 도쿄의 한 서점에서 오까 마사하루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발견한 그는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피폭에 대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로부터 그는 오로지 ‘군함도’에만 매달렸다. 첫 작품은 2003년 ‘까마귀’(전5권)란 제목으로 나왔다. 2009년에는 일본어판 ‘군함도’가 출간됐다. 그러나 작가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서사 대신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데 치중한 것이다.


한 씨는 18일 ‘군함도’출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은 물 위에 떠있는 얼음덩어리일 뿐인데 그 밑에 역사적 실체를 그리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전폭적인 개정작업이 이뤄졌다. 틀만 남기고 새롭게 집필했다. 그런 험난한 여정을 거쳐 ‘군함도’는 27년만에 완결됐다.

작가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매달려온 작업을 끝낸 소회를 “우리시대가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이제 역사를 문학 속에서 기억하려는 발걸음을 떼려고 한다. ”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여름, 처음으로 군함도에 들어갔다. 15살 어린나이로 일본으로 끌려온 징용의 피해자 서정우씨와 직접 군함도에 올라 숙사가 있던 건물에서부터 섬 전역을 돌며 참혹했던 시절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었다.

서 씨는 당시 몇번이나 섬의 절벽에서 죽으려 했다며, 가장 큰 고통은 린치도 노동도 아닌 배고픔이었다고 그에게 들려줬다.

서 씨는 소설 속에서 고구마 꼬투리를 줍다가 일본으로 끌려오는 소년 ‘성식’이라는 인물이 된다.

이후 작가는 수없이 군함도와 나가사끼를 오갔다.

작가는 우연히 군함도에서 사망한 사망자의 상세한 자료가 담긴 사망진단서를 손에 넣게된다. 이 자료에는 1925년부터 1945년까지 20년간 군함도에서 사망, 화장 처리된 조선인의 본적과 연령, 병명이 기록돼 있다. 이 자료에는 일본으로 끌려왔던 젊은 여성이 음독자살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에겐 생소한 ‘기업위안부’로 기록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뿐 아니라 당시 일본 기업에는 종업원을 위한 위안부가 있어 회사에서 관리를 한 것이다, 이 여자가 모티브가 돼 소설 속 ‘금화’라는 여주인공이 탄생한다.


한 씨는 전면 개작에 대해 “주인공의 징용 과정, 특히 군함도에서의 고난을 더욱 섬세하게 묘사해 그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난이 다만 신고의 세월에 머무르지 않고 자아의 지평을 넓혀가며 성장하는 과정으로 서사적 흐름을 바꾸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군함도에서의 참상이 더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됐다.

소설 ‘군함도’는 친일파 집안 아들 지상이 형 대신 징용을 자원, 일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데서 시작한다. 현해탄을 건너 시모노세끼로 이동하면서 그는 욕설과 매질속에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을 감지한다. 그나마 춘천고보 출신 우석을 만난 게 행운. 둘은 조선독립의 꿈을 키우고 상조회를 조직, 고향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다 발각돼 탄압을 받은 상록회사건에 뜻을 함께했던 두 사람이다. 둘은 나란히 미쯔비시광업소 타카시마탄광 하시마분원에서 감옥같은 징용생활을 시작한다.

죽어서 밖에 나갈 수 없는 섬, 지상은 어렵사리 고향에서 날아든 득남소식을 듣고, 벌레같은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히고 우석, 필수와 탈출을 게획한다.


작가는 왜 그토록 오래 과거사에 매달려온 걸까.

그는 “국가 혹은 역사가 뒤엉킨 거대한 불행, 끊임없는 불평등과 삶, 그 자체를 뒤흔드는 압제 속에 언제까지 살아가야 하는가가 오랜 의문이었다”며,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고 그 가치를 위해 자신을 불사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과거의 역사를 “문학적 기억으로 남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당시를 증언해줄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서정우씨의 생생한 증언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광징용공들의 이야기는 국내소설로는 전무하다. 피폭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한 씨는 “이건 우리의 부끄러움”이라며, “피폭자가 나가사끼에서만 4만명이라는데 이런 문제를 덮고 그냥 갈 수 없다. 근본적 각성을 위한 문화적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설을 쓴 것도 “과거의 진실에 눈을 뜨고 기억하길” 바래서다.

그는 한일관계는 ‘흔들의자’ 같다고 한다. 뭔가 움직이는데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사를 서사적 건축물로 세우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기억의 3부작’이 그것, 사할린 강제징용, BC전범, 피폭 2,3세 문제 등이다.

“우리는 한일국교정상화화때 과거사를 웅덩이에 쓸어담고 물을 채워버렸어요, 비가 오면 그대로 넘쳐나는 거죠. 이걸 해결해야 해요.”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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