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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여혐과 조현병 사이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다 되도록 이번 사건이 ‘여성 혐오’에 의해 발생한 ‘여혐 사건’인지 조현병을 앓고 있던 피의자가 가진 피해망상에 의해 벌어진 사건인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벗어나 추모 공간이 마련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양측의 인식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형적인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이며 피의자가 일반적인 여성 혐오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피의자는 사건 당시 먼저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은 그대로 둔 채 처음 맞닥뜨린 여성을 공격했다. 이유에 대해 “여성이 나를 죽일 것이라서 먼저 죽였다”고 진술했다. 그의 피해 의식은 분명 여성을 향하고 있다.

사회적 사건의 성격은 무 자르듯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나 ‘정신질환 범죄’로 규정한다고 해서 나머지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원인을 하나로 한정지으려 할수록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차단된다. 이번 사건에서 피의자의 ‘여성 혐오’와 ‘피해망상’은 동전의 양면일 가능성이 높다. 두 요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범죄에 이르게 됐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서천석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조현병 환자의 환청이나 망상의 내용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은 것은 우리 사회 내에서 만연한 ‘여성 혐오’가 그의 망상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피의자가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갖고 있더라도 사회가 그의 정신병을 적절히 관리하고 치료했다면, 그가 범죄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막았을 것이다. 정신질환자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적 편견은 그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거나 적절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을 방해했다.

결국 ’남성과 여성’,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이번 사건을 만들고 키운 비극의 주범이다. 문제는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지금도 이 같은 극단의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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