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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려없는 검·경, 무관심 법원…‘법’은 여성을 두번 울린다
안일한 수사·재판에 2차 피해


범죄 피해여성이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사법기관을 찾았다가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수사관과 재판관들의 안일한 여성관이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여중생 집 앞까지 따라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성희롱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재판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무죄를 선고해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했던 여중생은 법정에 나와 다시 증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학업과 불안감을 이유로 끝내 출석을 거부했다.

2심 재판부는 검찰과 1심 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구인절차를 거치지 않아 피해자의 경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징역 6월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 진술조서가 증거능력을 가지려면 진술자가 사망ㆍ기억상실 상태이거나 법정에 나와 증언을 거부한 경우, 구인을 명했지만 구인이 집행되지 않은 경우 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주장한 학업이나 불안감은 불출석 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이 나이 어린 피해자가 가해자와 대면해야 하는 두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절차적 논리에만 집중해 결론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사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경남 3개 지역 경찰관 1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8%가 ‘여성의 심한 노출로 인해 성폭력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옷차림도 성범죄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범죄 피해여성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무관심이 더 큰 2차 피해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피해자학회와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수사관 또는 재판관으로부터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 등으로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는 전체 성폭력 관련 고소인의 약 25%에 달한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이들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추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피해 여성의 신원보호에 대한 낮은 인식도 문제다. 실제로 2013년 경남의 한 경찰은 특수강간죄를 저지른 남성을 신문하면서 피해여성의 직업을 발설해 성폭력처벌법상 비밀준수 위반으로 올해 2월 벌금 30만원이 최종 확정됐다.

법원은 “피해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가해자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여도 여성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었다”며 해당 경찰의 부주의를 지적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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