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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랜드마크 타워 징크스, 그리고 롯데
기업가정신과 한 묶음으로 쓰이는 말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 일반이론’에서 주창했다. 동물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듯이 기업인도 사업 경험과 직관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 투자를 감행한다는 얘기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필생의 역작인 잠심 롯데월드타워도 좋게보면 야성적 충동이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의 랜드마크 타워를 지어 보이겠다는 그의 신념은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하다. 123층짜리 마천루는 역대 정권마다 반대하던 사업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세 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시도됐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세상에 국방시설을 고쳐가면서까지 한 개인의 소망을 이루게 해주는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며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기업가 출신의 이명박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마침내 물꼬가 트였고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그가 대권까지 거머쥐면서 월드타워는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타워를 가졌던 기업들은 하나같이 그 말로가 초라했다. 70년대 고도성장기를 상징했던 청계고가 옆 삼일빌딩(31층)의 주인 삼미그룹은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3저 호황과 88올림픽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80년대의 영화를 비추던 여의도 63빌딩의 주인 신동아그룹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세계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던 대우그룹의 본산으로, 서울에 풍운의 꿈을 품고 올라온 시골청년들의 가슴을 뛰게했던 서울역 대우센터빌딩은 외환위기의 풍파에 무너졌다.

랜드마크 타워 징크스에 운 기업들이 많지만 롯데는 이와는 다른 행로를 갈 것이다. 내수 기반이 탄탄한데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작금에 펼쳐지고 있는 역대급 검찰 수사도 총선에 참패한 역대 정권이 전가의 보도 처럼 꺼내들었던 국면전환용 사정 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닥친 롯데그룹 초유의 위기는 따지고 보면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90대 고령에도 경영권을 놓지 않고 있다가 두 아들이 치고받는 왕자의 난을 초래했다. 장남은 급기야 롯데의 경영 난맥상을 검찰에 넘겨주는 내부 고발자가 됐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의 피조물 인간이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신에 가까이 닿으려 하자 창조주가 그들의 교만에 노해 제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했다. ‘언어의 분산’이라는 형벌로 인간을 흩어놓아 더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신격호와 신동주ㆍ신동빈 형제들은 ‘유통 왕국’ 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라는 바벨탑을 쌓으면서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제각기 다른 길로 갔다. 이 길로 쭉 가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려다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랜드마크의 저주 ’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 문호진 편집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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