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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푸팬더’에 압도당한 천경자 1주기ㆍ백남준 10주기…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요즈음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 서소문 본관은 정문에서부터 시각적인 충격을 준다. 어느 식당, 혹은 전자기기 대리점 개업식에서나 봄직한 대형 풍선 인형이 거뭇거뭇 때가 탄 채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쿵푸팬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4월 30일부터 열고 있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의 일환으로 미술관 정문 앞과 전시장 1층 로비에 드림웍스사의 대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조형물로 세워놨다. 미술관이라기보다 키즈카페나 테마파크에 가까운 모습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앞. 거대한 쿵푸팬더 풍선 인형이 서 있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건물 밖 쿵푸팬더는 차라리 낫다. 건물 안 1층 전시장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멜먼(‘마다가스카’ 기린 캐릭터)’의 거대한 뒷태를 보노라면 도무지 전시장 안이 궁금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당황하게 된다. 아, 이 미술관에서 천경자 1주기, 백남준 10주기 추모 전시가 열리고 있지….

오는 8월 6일이 천경자 사망 1주기다. 백남준은 그보다 앞서 1월 29일이 10주기였다. 꼭 기일에 맞춰 전시를 열 필요는 없다. 기념일보다 중요한 건 기념의 의의기 때문이다. 천경자 1주기 전시는 미술관 2층에서, 백남준 10주기 전시는 3층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다행히 전시는 꽤 흥행하는 중이다. 미술관은 평일 낮 시간에도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미술관을 점령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관람객들도 많다. 

미술관 관계자는 드림웍스 전시보다 천경자 전시에 더 많은 관람객들이 몰린다고 했다. 도록은 없어서 못 팔 정도. 도록 초판 인쇄본이 전시 개막 일주일만에 다 팔려 나갔다고 했다.

전시는 순항 중이지만 전시들의 면면은 여전히 씁쓸함을 안긴다. 특히 천경자 1주기 추모전이 그렇다. ‘미인도’ 진위 논란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 민감한 시기, 공립미술관에서 연 첫 천경자 1주기 추모전은 일부 작품을 놓고 유족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천 화백 장녀 이혜선 씨와 미술관에 따르면 전시가 열리기 전 의견이 조율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 씨는 6개 작품에 대해 “사인의 위치가 이상하다(금붕어, 여인)”, “구도도 이상하고 볼륨이 전혀 없다(뉴델리)”는 등의 의견을 미술관 측에 전달했다.

천 화백을 사망 직전까지 돌보며 작품 관리를 해 왔던 이 씨는 “중요한 작품들은 빠진 상태에서 가뜩이나 위작이 많은 금붕어 그림을 굳이 이 중요한 추모전에 전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전시에 천 화백이 생전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에 개인 소장가들 작품 몇 점이 나왔지만, 정작 미공개 주요작들이 많이 빠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술관 관계자는 “작품 모두 소장 경로가 확실하고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법률 자문까지 받아놓은 상태”라며 “전시와 관련해 유족과 협의할 부분은 있지만 합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이 관계자는 또 “주요작들의 소장처를 다 파악하기도 힘들고, 안다 하더라도 소장자가 대여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10주기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과 더불어 그의 예술세계에 모태가 됐던 플럭서스의 자취를 함께 다뤘다.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오노 요코 등 백남준과 동시대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학구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꾸렸다.

그러나 백남준의 주요 작품들을 기대하고 오는 관람객들에겐 적잖은 실망감을 준다. 사진, 드로잉, 지도, 전시 홍보 포스터 등이 나열돼 있어, 작품 전시라기보다 아카이브 자료실 같은 느낌을 준다. 올해 초 상업화랑에서 백남준의 TV 로봇 시리즈를 비롯한 비디오 조각 및 평면 작품 40여점을 한꺼번에 보여줬던 전시에 비하면, 공립미술관의 백남준 추모전은 어쩐지 초라한 느낌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 로비.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다시 드림웍스전.

예술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술의 대중화는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데 있는 것인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전시다. 미술관이 꼭 근엄하고 고압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테마파크처럼 무장해제 할 이유까지는 없어 보인다.

드림웍스전은 8월 15일까지. 드림웍스전보다 늦게 개막한 천경자전은 8월 7일, 백남준전은 7월 31일에 끝난다. 최소한 대형 풍선 인형이라도 치워지고 나서 추모전을 열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드림웍스전의 입장료는 1만3000원. 천경자, 백남준 전시는 무료다. 한국 미술사에 족적이 큰 작가들의 전시를 무료로 보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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