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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과 시인책방
카페가 대형체인점화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카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게 요즈음이다.

체인점 시대가 열리기 전,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마 이름이었을 싶다. 이름에는 카페의 분위기, 주인의 성향을 그대로 담겨 있기 마련이어서 실내 음악이 클래식인지, 팝, 가요인지부터 주요 메뉴와 실내 장식까지 이름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갔다.

한 때는 소설이나 시의 제목이 청춘들이 자주 찾는 카페나 생맥주집의 이름으로 종종 등장했다.

그런 곳 중 기억나는 데가 신촌기차역 인근에 있었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곳이다. 80년대 엄혹한 분위기에서 그 이름은 이국의 낭만적 풍경을 그려내며 청춘들에게 묘한 환상을 제공했다. 추운 계절, 노란 등에 비쳐 나비처럼 어지러이 눈이 내리거나 한 여름 땡볕에 차가운 그 이름의 유혹은 유독 강렬했다. 전혀 낯선 세계일 것 같은 그 곳에 발을 들여놓은 건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난 한참 뒤였다. 아마 환상 안으로 들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러시아 화가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따온 김춘수 시인의 시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관념과 사물의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온 시인의 잘 알려진 시와 달리 이 시는 묘사적이다. 소설과 박상우도 이 제목으로 소설을 썼다. 80년대 청춘들의 불안한 자화상이라해도 좋을 작품이다.

지금은 화장품과 옷가게가 점령한 이 길 한 쪽에 몇 주 전, 시집 전문서점이 생겼다. 유희경 시인이 경영하는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책방이다. 인디 레이블 파스텔뮤직이 합정동에서 이사한 건물 3층 카페 한 쪽에 두 개의 책장을 마련, 문을 연 것이다. ‘오픈빨’이라고 해야 할지 책방엔 손님들로 북적였다. 동료시인들이 줄줄이 문을 두드렸고, 시집들은 재고가 금세 바닥났다. 한 시인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수십만원어치 시집을 샀다. SNS를 통해 오픈 소식을 알게 된 독자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들은 시인이 책값을 계산하고 말을 건네는 특별한 경험에 만족스러워했다.

책방이 든 곳은 파스텔뮤직 까페와 프린테 아트상품, 희귀 앨범 등이 공존하는 숍인숍 형태다. 시를 좋아하는 게 과거에는 소녀 감성 정도로 치부됐다면 이젠 ‘힙한’ 문화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김소연, 황인찬, 허연 시인들의 시 낭독회. 이병률 시인과 에피톤 프로젝트가 어우러진 콘서트는 3분 만에 표가 매진되는 등 인기다.

유 시인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재미있게 노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촌이 다시 낭만과 문화의 중심으로 돌아올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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