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2차 세계대전 獨은 ‘책 학살’ 美는‘진중문고’
마이클 주삭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책도둑’에는 책 화형식이 등장한다. 히틀러의 광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때 지식의 유치함에서 자유를 얻자는 구호 아래 마을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산처럼 쌓아 놓은 책더미에불을 붙이고 책을 던지며 환호한다. 어린 소녀 리젤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타 버린 잿더미 속에서 누가 볼 새라 얼른 멀쩡해보이는 책 한권을 외투속에 감춘다.

실제로 1933년 5월 베를린광장에선 역사에 남을 만한 책 화형식이 벌어졌다. 광장 한 가운데 거대한 장작더미를 세우고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책을 가득 채운 자동차 행렬에서 책을 꺼내 불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책을 던져 넣은 사건이다. ‘타임’은 이를 상세히 보도하며 ‘책 학살’로 불렀다.

‘전쟁터로 간 책들’(책과함께)은 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싸움, 책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1933년 독일 총리가 된 히틀러는 독일 사회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개조하려 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방해가 된 것은 책이었다. 평화와 자유, 개혁을 얘기하는 책, ‘비독일적’인 책과 문헌은 적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책이 ‘사회악의 근절’이란 이유로 불에 탔다. 대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국가 지정 필독서가 됐고 전쟁기간동안 독일이 점령한 유럽 각국의 문서보관소, 박물관, 연구소, 도서관이 줄줄이 사라졌다.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1945년 5월8일까지 유럽에서 불태워진 책은 1억권이 넘는다.

독일이 이데올로기의 세뇌 내지 비판의식의 소거를 위해 책을 이용했다면, 미국은 위안의 수단으로 책을 활용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2월 미국 정부와 출판계는 나치 독일의 ‘책 학살’과 ‘문화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비상계획을 세웠다, 출판사들이 모여 책을 책을 승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작가와 정부가 거들면서 ‘전시 도서 보급계획’이 추진됐다.

이어 전시도서협의회가 발족, 사상의 자유를 수호하고 위대한 가치를 담아낸 책, 군인들의 호주머니와 배낭에 휴대할 수 있는 가볍고 작은 페이퍼백 즉 진중문고가 탄생한 것이다.

진중문고는 늘 병사들과 함께 했다. 웃음, 영감, 희망을 얻고 싶을 때,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고 불안을 떨쳐내고자 할 때,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 참호속에서 100그램짜리 진중문고가 위로가 됐다.

‘전쟁터로 간 책들’은 법학박사이자 변호사인 몰리 굽틸 매닝이 한 출판사의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군인들의 독자편지에서 시작됐다. 수많은 독자편지가 전장에 책을 보급해준 데 고마움과 독서를 통해 얻은 감동과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은 책과 전쟁이라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진중문고의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