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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은 냉전시대 모든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2차 세계대전중 美·蘇 곳곳 대립
1948년 서방 베를린 철수싸고 갈등
냉전 최전선 한반도서 결국폭발
공산주의·민주주의 끝없는 전쟁
종전후엔 美·蘇 핵무기등 군비경쟁
서독은 軍재건 세계공동체에 복귀



“한국전쟁은 냉전의 범주에서 초강대국들로서는 포커게임이자 한반도로서는 비극이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전쟁은 흔히 냉전의 역사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간주되지만 베른트 슈퇴버 포츠담대 교수는 냉전 시대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새로운 패권국가로 우뚝 섰다. 서독과 일본 등은 한국전쟁으로 경제적 부흥을 톡톡히 봤다. 또 냉전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미소 강대국 간 군비경쟁이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슈퇴버 교수의 저서 ‘한국전쟁’(여문책)은 냉전의 각축장이었던 한국전쟁을 외부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책은 한국전쟁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 시야를 넓혀준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한반도에서 벌어진 예외적인 전쟁이 아닌 냉전이 시작되는 시기에 일어난 모든 전쟁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관련해선 여러 학설이 있지만 저자는 그 뿌리를 1947년에서 찾는다.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중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동맹관계를 맺지만 이내 삐걱이기 시작한다. 1945년 이래로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빚은 둘은 1947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트루먼은 3월12일 의회연설을 통해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에게 권력이 넘어갈 위험에 처한 그 어떤 나라도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한다. 트루먼 독트린에 맞서 6개월 뒤, 스탈린의 메가폰 역할을 한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두 정치적 진영 사이의 투쟁을 요구하는 연설로 대응한다. 두 연설은 ‘전쟁선포’나 다름없었다.

1948년 제1차 베를린 위기는 미국과 소련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게 했다. 소련이 서방세력에게 베를린에서 퇴각하라고 강요한 이 사건에서 미국은 소련이 전쟁 중에 합의한 것처럼 독일의 제국수도에 대한 서방세력의 권리를 무력화시킬 경우 지체 없이 핵폭탄을 동원할 것이란 점을 내비친다. 이는 소련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갖추고 군비경쟁에 뛰어들게 만든다.

한국전쟁은 바로 제1차 베를린 위기가 끝나고 핵 경쟁이 시작된 시기에 발발한다. 저자는 한반도가 당시 양대 초강대국의 안전에 최우선적인 지역에 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적시한다. 이 전쟁이 3년간 450만명의 사상자를 낸 상상을 초월할 혈전을 치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다수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맺어진 미소동맹이 와해되고 이 두 초강대국이 전후 질서에 합의하지 못한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맥아더가 1951년 2월11일 재차 요구했던 핵무기 투입은 오래 논의되었다. 트루먼도 최소한 한때는 핵무기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미 공군이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를 폭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11월30일에 이미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을 향해 핵무기를 투입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한국전쟁’에서)

한국전쟁을 개괄하면서 각국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전쟁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쪽이다.

저자는 중국은 성공적 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결과야 어찌됐든 하나의 승리였다고 평가한다. 북한에 중국 인민지원군을 성공적으로 투입시킨 직후 마오저뚱은 1950년 10월 스탈린에게 군비조달 및 핵무기 설계도를 요구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둘 사이는 멀어졌다.

유럽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챙겼지만 전쟁에 엄청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사리 이뤄낸 내부 단일화가 한국전쟁으로 깨졌다. 분단된 독일의 불안은 더 컸다. 소련 지배에 있던 동유럽국가들은 즉각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국가를 수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독은 엄청난 전쟁공포에 빠졌다. 이 때 서독 군대의 재건논의가 시작되면서 서독은 세계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한다.

책은 미소 양 진영간 대립이 한반도를 넘어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등지에서 당시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1944년부터 49년까지 이어진 그리스 내전,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무슬림이 우세한 파키스탄의 분리 갈등, 1947년 이탈리아에선 소련과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은 선거전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전투양상으로 번졌다. 또 페르시아만 보급로와 유전지대 확보를 위한 이란을 둘러싼 소련과 서방의 위협 등 작은 전쟁은 한반도 밖에서 끊임없이 벌어졌댜.

책은 또한 이승만을 신뢰하지 않았던 트루먼, 남침설이 설득력을 얻었던 배경, 휴전 협정 등 예민한 사안들도 빠짐없이 짚었다.

한국전쟁의 다양한 자료도 눈길을 끈다.

그 중 병사들의 정신질환 정도를 보여주는 미군 의무부대기록이 있다.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9월까지 정신질환자가 속출했는데 심신쇠약, 무감각, 두려움, 몸을 떠는 증상, 불면증, 악몽 등 거의 모든 증세가 망라됐다. 미군 소총수의 절반만이 북한군과 중공군을 겨냥, 총을 쐈다는 기록도 있다. 또 하나는 미국의 해외정보국에서 시행한 심리전. 공산주의와 어떻게 대결할 것인지 그 실험이 한국전쟁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1950년 10월부터 미군은 전쟁의 목적이나 정치 체제의 차이, 미국과 소련의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등을 담은 삐라를 북한 전역에 살포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이후 한반도 정세와 최근 북핵무장과 탈북현상까지 두루 살핀 이 책은 저자가 한국학자들과 10년 넘게 교류하면서 깊이를 더해간 연구결과다. 국내외 방대한 자료를 망라해 한국전쟁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의 전쟁 속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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