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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 열풍, 400년전 암스테르담에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400년전 첫 공모
30일만에 자본금 ‘1억유로’성공적 조달
옵션·리스크·작전 등 주식용어도 난무
지도·사진·연표 활용해 17세기 여행하듯
주식·거래소 탄생과정 흥미롭게 소개



“투기꾼들은 입만 열면 오직 주식 얘기였다. 어딜 뛰어가면 주식 때문이었다. (…) 공부를 하면 주식에 대한 공부였고, 항상 주식에 대한 환상을 꿈꿨다. 병들어 죽는 자리에도 주식 걱정만을 했다.”

자본주의의 심장, 월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17세기 암스테르담의 풍경이다.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가 있던 곳이다. 해가 지면 암흑에 빠지고 광장엔 교수대에 사형수의 몸이 걸려 있어 오싹하게 만들던 중세 도시에 주식투자 열풍이 분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옵션, 선도 거래, 리스크, 작전, 무차입 공매 등 요즘 증권가에서 쓰는 말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대박을 친 사람도, 쪽박을 찬 사람도 흔했다.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데베이크 페트람이 쓴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이콘)는 400년전 주식과 증권거래소의 탄생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은 알려진대로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다. 아시아로 출항한 배들은 동방의 신비한 물건을 싣고 돌아와 수익을 챙겼다. 네덜란드 의회가 포르투갈과 경쟁하기 위해 6개 도시 프리컴퍼니들을 통합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것은 1602년. 전국에 6개 사무소를 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최초의 대기업이라 할 만하다. 동인도회사는 의회가 만든 정관에 따라 투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누구나 이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었고 투자액도 제한이 없었다, ‘증권’을 발행한 최초의 주식회사가 생겨난 것이다.

1602년 8월1일부터 30일까지 동인도회사의 이사의 가정집에서 이뤄진 최초의 청약결과, 초대 주주로 등록된 사람은 총 1143명. 자본금은 총 650만 길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유로 정도였다. 기업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주주를 모집한 역사상 최초의 청약은 성공적이었다. 

“1622년 발행된 소액주주운동 팸플릿에는 동인도회사 이사들이 주주들을 등쳐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내용을 비롯해서 회사 구조를 개선하고 주주의 권리를 확보하라는 글들이 쓰여 있다. 주주들의 주장이 팸플릿 형태로 제작됐다는 것은 곧 이슈가 소수 주주들만의 문제가 아닌 네덜란드 국민들 전체가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란 걸 보여준다.”(‘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에서)

이 회사의 정관에 따르면 투자는 21년간 장기 투자형태였다. 대신 청약 당시 지분을 마음대로 팔 수 있는 추가 조항을 넣었다.

갖고 있는 지분을 가장 먼저 타인에게 양도한 주주는 얀 알레츠 토토 론덴. 투자금 모집이 끝난 지 약 6개월 만인 1603년 3월3일 총 3000길더어치의 청약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첫 출항이 있기도 전에 그는 왜 지분을 팔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 지분을 살 돈이 없었던 것. 청약 당시 회사는 바로 그 자리에서 현금을 받지 않고 3회에 걸쳐 나눠 받았다.

얀 알레츠는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이 거래에서 돈을 벌었다. 약 6개월 사이에 지분의 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에는 증권거래 자체로 이윤을 추구하는 트레이더들이 생겨난다. 현대의 증권거래의 틀이 이때 잡힌 셈이다.

주가는 누가 동인도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느냐, 어느 유명인이 주식을 샀느냐에 따라 흔들렸다.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이사에 대한 비판을 담은 팸플릿이 만들어지고 주가 조작과 장부 조작, 전문 트레이더들과 비공개 회원제 클럽 등 현재의 주식거래 행태들이 이미 당시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가 당대 문헌을 꼼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에는 ‘주식1주’라는 개념이 없었다. 투자자들로부터회사의 지분 청약을 받을 때는 ‘주식 몇 주’라는 형식이 아니라 ‘자본금 몇 길더’라는 형식으로 받았다. 주식증권이란 개념도 없었다. 장부에 주주들의 이름과 지분을 기록하는게 전부였다. 주식의 소유권을 이전할 때도 종이 증서를 주고 받은게 아니라 장부를 고치는 식으로 이뤄졌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주식회사의 초창기에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주주는 몇년에 한 번씩 배당금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최근에 생긴 것이다. 현물이 아닌 선물, 즉 파생상품 거래가 주를 이뤘다는 점도 우리의 통념과 다르다.

이 책에는 주식과 거래라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7세기부터 시작됐다는 사실 외에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증권거래소가 어떻게 17세기 이후 서유럽을 패권국가로 만들었는지 그 비밀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옮긴이가 제공하는 특별한 자료들이 많이 들어있다. 해제를 통해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의 의미와 함께 한국 최초 증권거래소의 역사를 정리해 놓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조선취인소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 증권거래소에 대한 설명은 한국 경제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외에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조선의 역사를 비교한 19세기 연표를 비롯, 책 속의 주요 장소를 표시한 지도와 사진까지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 덕에 17세기 암스테르담을 실감나게 돌아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자 일상의 경제활동인 주식거래의 역사와 개념, 투자의 원리를 여행하듯 즐겁게 알아갈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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