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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살아있음’을 보여준 최승자
“참 우습다./작년 어느 날/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나는 깜짝 놀랐다/나는 아파서/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2010년 등단 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최승자 시인의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에 실렸던 ‘참 우습다’는 시다. 그래도 나이를 또 세본다. 시인의 나이 64세다. 80,90년대 사랑, 삶, 죽음에 대해 날 것의 독한 언어로 우리의 의식을 강타했던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가 출간됐다. 그의 시집은 정신과 몸을 휘젓는 병과 싸워 얻어낸 빛나는 전리품이나 다름없다.

92편의 시가 담긴 시집은 그의 생존증명서와 같다. 시를 써서 생존을 증명하고 있는 시인은 이제 스스로를 가둔 감옥을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조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살았능가 살았능가/벽을 두드리는 소리/대답하라는 소리/살았능가 죽었능가/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살았능가 살았능가’)

독기어린 시어로 충격을 줬던 시인의 언어는 연해지고, 아프고 격렬했던 시인을 몰아갔던 일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도 한층 순해진듯하다.

“따뜻한 풀빵 같은 그러나 끝내/먹지는 않고 손에 쥐고 있을/따뜻한 풀빵 같은 이 운명은 누가 내게 주는 것일까”(‘따뜻한 풀빵같은’), “해 가고 달 가고/뜨락 앞마당엔/늙으신 처녀처럼/웃고 있는 코스모스들”(‘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얼마나 오랫동안/세상과 떨어져 살아왔나/“보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오늘 처음 깨달았다”(‘얼마나 오랫동안’)

시 쓰기가 개인의 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뼈아픈 각성을 주는 ‘시는’은 시대의 목소리, 예언자였던 시인의 정체성을 환기시킨다.

“詩는 共有의 하늘에서 오는 것/詩는 사회적 江물/詩는 새들이 하루 종일 마시는/몇 모금의 물”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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