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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있고, 없고
고승(高僧)이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놓고 어린 승들에게 말했다. “이 막대기를 길게 만들어보아라. 막대기에 손을 대거나 풀이나 줄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어린 승들은 해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수개월 동안 끙끙대었다.

며칠 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셀프 인테리어와 DIY 등 집 꾸미기 열풍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 와중에 K가, 살고 있는 작은 빌라를 팔고 다른 작은 주택을 사서 빌딩으로 재건축하는 꿈을 꾼 지 오래되었는데, 수년 째 빌라가 팔릴 기미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마음이 떠나서 그런지 그곳에 살고 싶지도 않고, 이렇게 평생 옹색하게 사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를 묵묵하게 듣고 있던 은퇴한 스승이 막대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줍잖은 해답을 내미는 사이사이에 K의 꿈을 이루어줄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K는 어릴 때 반 지하방에 살면서 주인의 고래 등 같은 집에 억눌려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 돈이 많은 줄 알고 결혼했으나 그렇지 않았고, 두 사람이 수년 고생하여 지금의 빌라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K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집을 갖게 되어 그 빌라에 들어서던 때의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우리는 비로소 스승이 던진 선문이 K의 집 문제에 대한 해답임을 깨달았다.

스승의 선문은 노자의 ‘장단상교’를 응용한 것이리라. 항간에 알려진 내용으로는 “해제 법문(解題法門)을 하는 고승이 승려 지팡이를 옆에 놓고 도끼나 손을 대지 말고 짧게 만들어 보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개월 끙끙대던 수많은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문제의 지팡이 옆에 더 긴 지팡이를 놓았더니, 고승은 맞았다며 웃었다고 한다. 더 긴 지팡이 옆에 놓인 지팡이는 상대적으로 짧아질 수밖에 없다. 옛 고승이 지팡이를 짧게 만들라고 말했다면, 우리의 스승은 K의 욕망에 빗대어 도리어 길게 만들어보라고 바꾸어 말했던 것이다.

며칠 후, K는 살고 있는 빌라에 하얀 도배지를 직접 바른 즐거움과 흥분을 전해왔다. 나도 살기 싫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사라고 내놓았으니 팔리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쓸데없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부엌이나 베란다를 치우고, 방문도 좋아하는 청색으로 바꾸어 놓았더니 완전히 다른 집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집 구석구석을 손질하다보니, 이를 갖고자 했던 때의 갈망과 이를 마련하기 위해 애썼던 남편의 노고까지 새삼 느껴졌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정성을 다해 바꾸어나가면, 진짜 ‘내 집’같아서 앞으로 쉽게 떠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농담을 해왔다.

K는 사람들의 조언대로 ‘나만의 공간’을 찾고 있다고 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위해 방해받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여유롭게 혼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장단(長短)처럼, 있음과 없음이 같은 것이었을까. 필자는 그녀가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어깨 위로 빛이 쏟아져 내리도록 아름다운 전등을 선물해 줄 생각이다.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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