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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개·돼지…그리고 한국판 트럼프
“미국인들은 자존심도 없냐? 트럼프 같은 사람을 밀게…”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얘기가 나오면 으례 한마디씩 던진다. “설마” 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어처구니 없는 미국인”이다. 미국의 품위를 깎아 내린다는 비판에도 트럼프는 160년 전통의 공화당 대선후보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유럽연합(EU)과 헤어지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설마” 했다. 하지만 설마는 현실이 됐다. 막상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자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다”고 내뱉었다. “어처구니 없는 설마”는 되감기를 해놓은 듯 무한반복됐다.

올 들어 외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를 꼽으라면 ‘테러’ 다음으로 ‘분노’ ‘실망감’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일게다. ‘엘리트’는 분노, 실망과 한 세트로 따라 다녔다. 엘리트에 대한 실망감, 엘리트에 대한 분노 등등…

설마했던 ‘트럼프 앓이’에는 엘리트에 대한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응축돼 있다. 브렉시트 역시 마찬가지다. 좋으나 싫으나 EU와 한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엘리트 진영의 주장에 ‘부끄러운 토리’(shy Tory)가 멋지게 한 방 날린 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분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 분석은 아니다. 내 일이 아니라서?

얼마전 이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있는 명쾌한 단어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왔다. 그것도 이 땅에서. “민중은 개ㆍ돼지와 같다”(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는 말은 모든 걸 설명해줬다.

99%의 개ㆍ돼지가 “이렇게 앉아서 당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반란이었다. 1%의 엘리트에 마냥 질질 끌려 다니고, 그들의 달콤한 거짓말에 신물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이 그간 속으로만 삭혀야 했던 응어리(?)를 속시원하게 말로 풀어내줬다. 그것도 그들의 언어로. 몰려드는 이민자도 골치 아픈데, 나아질 게 하나도 없는 현실에 울화통이 터진 ‘부끄러운 토리’는 보리스 존슨 같은 설탕발림 정치인에 환호했다. 그러고 보면 2016년은 1%의 엘리트와 99%의 개ㆍ돼지의 싸움에서 모처럼 99%가 선방을 날린 해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혹자는 포퓰리즘의 설탕발림에 개ㆍ돼지가 속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사기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 콧방귀나 뀔 일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심지어 재산을 모두 탕진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개ㆍ돼지가 사기를 당할 수 뿐이 없는 냉혹한 현실 말이다. 1%의 엘리트들이 개ㆍ돼지를 옥죄는 각종 병패에 그럴싸한 치료법을 내놓지 않는 한 ‘설마’는 무서운 현실이 된다. 미국이 그렇고 영국이 몸소 보여주지 않았던가.

한국이라고 포퓰리즘의 쓰나미에서 안전지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으련다. 입만 아프고 속만 상한다. 양파 껍질처럼 까고 또 까도 끝이 없는 1%의 막장 드라마, 대놓고 99%를 개ㆍ돼지라 말하는 위정자들, ‘예스’가 아닌 모든 것을 편가르기로 몰고 가는 나라에서 ‘한국판 트럼프’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이래도 개ㆍ돼지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한석희 인터내셔널섹션 에디터/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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