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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1300조의 가계부채 그리고 2007년의 데자뷔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행렬이 절정을 이루는 시절이다. 그런데 이런 휴가 분위기를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아파트 분양 시장이다.

통상 건설사들은 휴가철 분양을 꺼린다. 모델하우스로 수요자를 최대한 많이 불러 모아야 하는 이들에게 휴가철은 치명적이어서다. 그런데 다음 달 전국의 아파트 분양 물량이 3만 2000여 가구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이란다. 처음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기준금리 1.25%의 역사적 저금리 시대가 열리자 시중의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밀려오는 시장 상황을 봤을 때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결론에 달했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가격과 그마저도 매달 수십만 원씩 부담을 져야 하는 월세로 전환되는 시대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하다. 연 2% 중후반의 저리로 돈을 빌릴 수도 있으니 구매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멀리 볼 것도 없다. 2007년 분양가상한제를 앞두고 건설사들은 요즘처럼 일제히 밀어내기 분양에 돌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국내 부동산 시장은 미분양 물량의 적체로 큰 고생을 했다. 적잖은 건설사들이 도산했고, 그에 딸린하도급업체도 큰 피해를 보았다. 하우스푸어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얼마 전 취재차 만난 금융당국의 한 고위간부는 집단대출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전매 규제가 풀린 이후 분양 아파트들의 손바뀜이 적잖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단기 투기 자금이 떴다방 등을 통해 훑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고스란히 입주가 집중되는 2017년 이후에 사회 문제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사들은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규제와 분양 보증 거부 등을 비판하고 있다며 그는 아쉬워했다.

가계 부채는 통계 발표 때마다 연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그런데도 1300조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계 부채는 집단대출을 발판 삼아 증가 속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떨어지는 집값과 넘쳐나는 미분양, 그리고 이로 인한 하우스푸어로 고민하던 게 불과 수년 전의 일이다. 그 시작은 2007년 분양가상한제 규제 도입 직전 쏟아졌던 밀어내기 분양이었다. 최근 입주 물량이 집중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7년 6개월간 쉬지 않고 오르던 전세가율을 떨어뜨릴 만큼 수요와 공급의 힘은 상당하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강렬한 햇살처럼 달아 오른 현재의 분양 열기가 9년 전의 데자뷔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뇌리를 스친다. 그럼에도 안정적 주거권을 위협받는 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택 구매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안락한 주거를 기대한 이들이 집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다시는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순식 금융투자섹션 금융팀장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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