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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미술관의 위작 ‘신분세탁’
최근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잇따른 미술품 진위 논란으로 근본적인 위작 근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필자는 위작이 거래되는 국내 미술시장을 정화시키는 일만큼이나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 미술관과 유명 사립미술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작 ‘신분세탁’을 막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감정전문가에 따르면 검은 세력들은 위작을 세탁하는 통로로 공공 미술관과 유명 사립미술관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미술관의 작품 수집은 대체로 구입, 기증, 기탁, 양도, 교환, 임대, 관리전환, 선물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위작을 미술관에 기증해 소장품으로 만들어 이와 유사한 가짜를 생산, 유통시키거나 기획전의 출품 작품에 위작을 포함시키고 도록에 끼워 넣어 이력 세탁한 후 고가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감정한 작품 중 대략 30%가 위작으로 판정될 정도로 엄청난 위작 거래 규모, 진위를 판별할 공신력을 갖춘 감정기구가 없는 현실, 국내 미술시장의 불투명한 거래 관행, 화랑과 경매, 전문가가 각종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폐쇄적인 구조, 감정가의 눈도 속일만큼 진품보다 더 진품같은 위작을 생산해내는 기술력, 심지어 위조된 작품감정서가 대형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에 첨부되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가짜가 미술관 소장품으로 변신하기란 시간 문제다. 이런 심각한 상태인데도 대부분의 공공ㆍ사립미술관이 인력과 예산부족을 이유로 위작을 걸러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필자가 과거 공공미술관 작품구입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에 의하면 진위를 판별하는 내부 검증시스템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최근 공립미술관에서 위작 시비에 휘말린 사례가 나타나는 배경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 대구시립미술관이 고 이인성 화가의 작품 ‘연못’을 전시하던 중 위작 논란에 휩싸였고 이달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화백의 1주기 추모전에 출품된 1979년작 ‘뉴델리’가 위작으로 추정된다는 일부 주장이 제기돼 진위 논쟁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정부와 미술계는 공공ㆍ사립미술관에 위작이 들어가 진품 행세를 하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법규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학자와 진위를 판정하는 감정가가 미술관에 걸린 가짜를 연구하고 진품으로 감정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 미술의 앞날은 어두워진다.

미술계를 뒤흔든 위작 논란을 계기로 공공ㆍ사립미술관은 이미 소장된 작품 중 위작이 없는지 재감정하고, 새로 구입하는 소장품이나 기증작, 기획전에 위작이 스며들지 않도록 철저히 검증하는 내부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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