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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1년①] 차마 눈감지 못한 그들…아직도 ‘진범 잡히는 날’ 기다린다
-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시행 1년
-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들 진실 속속 밝혀져
-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강간치사 등 여전히 공소시효 적용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2016년 7월 31일.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지만 더이상 태완이와 태완이 가족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사당국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1년을 맞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사당국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하지만 강간치사를 비롯해 폭행치사ㆍ상해치사 등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는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강간치사를 비롯해 폭행치사ㆍ상해치사 등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은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효목동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당시 6세) 군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뿌린 황산에 정면으로 맞았다. 태완이는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고 패혈증에 걸려 49일 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사건 당시 목격자가 없어 난항을 겪었다. 유일한 증거는 태완이가 사망하기 전까지 남긴 300분 가량의 증언. 그러나 경찰은 생사를 오가는 6세 아동이 부모의 유도진술에 의해 한 말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005년에는 경찰 수사본부도 해체됐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 다룬 방송 프로그램. [사진 출처=MBC 캡쳐]

시간만 흐르던 2013년 11월, 태완이 부모와 대구참여연대는 이 사건의 재수사를 공개 청원했다. 살인죄 공소시효인 1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의 재수사에도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공소시효를 3일 남긴 지난해 7월 4일 태완이 아버지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 주민 A 씨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그를 불기소 처분했다.

태완이 부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적절했는지 따져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을 하면 법원 결정 때까지 공소시효가 중단돼 최대 90일까지 연장되지만 대구고법에서 기각됐다. 대법원 재항고마저 기각되면서 ‘화성연쇄 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함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비록 진범은 잡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라”는 여론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결국 지난해 7월 31일자로 태완이법이 공포ㆍ시행되면서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7년 기준으로 그 전은 15년, 그 후로는 25년이 적용됐으나 그마저 폐지된 것이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사건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를 열흘 앞둔 시점에 태완이법이 적용되면서 공소시효에서 배제됐다.

2000년 8월 10일 택시기사 유모(42) 씨가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옆구리와 가슴 등의 부위를 흉기에 찔린 채로 발견된 이 사건은 그후 목격자였던 최모(당시 16세) 씨가 범인으로 결론나면서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0년 만기 출소한 최 씨가 “강압에 의해 자백했다”고 주장하면서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지난 21일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노경필) 심리로 열린 재심 두 번째 공판에서 노 부장판사는 “재심 결정은 최 씨가 유죄가 아닐 수 있다는 증거가 새롭게 나왔고, 이게 법원에서 채택돼 이뤄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무죄 가능성이 높은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피고인석에서 “법정에서 끝까지 진실을 가리고 싶다”고 답했다.

이처럼 미제사건들의 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강간치사·폭행치사·상해치사·아동학대치사·영아살해 등은 “각 법에 따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소시효가 여전히 존재한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반대 의견도 여전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건 관계자 진술이 부정확하고 물증 소실 등 증거의 구체성이 흐려져 공소시효가 있는 것인데, 선진국이 한다고 오랜 논의 없이 도입하는 게 과연 맞는지는 의문”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홍찬기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법학 박사)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범죄피해자 가족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미해결사건의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기고 있다”며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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