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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롱인터뷰] “제 마술에는 애드리브가 단 1도 없습니다”
-마술에 뮤지컬 접목한 ‘더 셜록’…최현우가 말하는 마술사의 세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무대에 올라 온 여덟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마술사가 물었다. “갖고 싶은 걸 말해봐. 다 갖게 해 줄게.”

아이는 고개만 가로 저을 뿐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분명 객석에 있을 땐 무대에 올라오겠다고 열심히 손을 들었던 아이였다.

아이가 계속해서 대답을 하지 않자 마술사는 당황하는 듯 보였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갖고 싶은 게 없어? 집이 잘 살아서 그래?”라며 상황을 끌어간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의심하지 말라”는 마술사의 말에도 끝까지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관객 1인. ‘영업비밀’을 더 캐물었다. 공사장 철근을 휠 때 아프지 않게 하는 장치가 있지 않느냐고. 그는 “진짜 아프다”고 말했다. “가끔 상처도 나고,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땐 다치기도 한다”고 했다. 순간 이동은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묻자 “정말 순간 이동을 한 거다. 슈욱~파악~”이라며 약(?)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 내일 공연에서도 또 비행기가 나오는가. “아니죠. 관객이 원하시는대로 나옵니다.” 하는 수 없다. 정말 매번 다른 게 나오는지, 정말 의심많은 관객들은 그의 공연을 또 보는 수밖에.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마술사 최현우(38)의 공연에는 끊임없이 관객들이 개입된다. 마술사가 객석으로 원반을 던지고, 이를 잡은 관객은 자신이 생각했던 숫자를 말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말하는대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연이 관객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많은 변수들은 모두 철저하게 계획된 각본에 의해서 통제된다. 최현우는 “내 마술에는 애드리브가 단 1도 없다”고 말했다.

▶관객참여형 마술쇼…모든 건 계획한 각본대로= ‘더 셜록’(~8월 28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공연이 한창인 마술사 최현우를 2일 공연장에서 만났다. 마술에 뮤지컬을 접목한 ‘매직컬’로, 지난해 겨울 첫선을 보였던 작품이다.

처음으로 시도한 평일 마티네 공연(12시)이었지만 객석은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빼곡히 들어찼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 내내 관객들의 집중도도 높았다. 단 한순간도 느슨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객을 참여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그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주말에는 공연을 해야하기 때문에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다고. 그러면서 마술을 취미로 꿈꾸는 이들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가세요. 그리고 여자친구와 공연을 보러 오세요”라고 말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얼마든지 마술을 배울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더 이상 마술을 마법이라고 믿지 않게 됐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믿는 게 있어요. 자신의 마음을 읽힐 때에요. 원반을 무작위로 던져 뽑힌 관객인데, 그 관객이 말할 걸 미리 읽어내면 사람들은 놀라요. 관객 참여가 많은 건 그런 기적을 선물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날 공연 전 관객들이 미리 써 낸 ‘갖고 싶은 것’ 목록에는 샤넬백도 있었고, 비행기도 있었다. 공연 마지막에 깜짝 등장한 건 무대를 꽉 채우는 대형 비행기. “매 공연마다 비행기가 나오도록 짜여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샤넬백도 나오고 조인성도 나온다”며 끝내 ‘영업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관객 참여가 많다 보니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도 많다. 특히 어린 아이 관객의 경우다. 무대에 올라오겠다고 해 놓고, 정작 올라와서는 울거나 그냥 내려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그 때마다 즉흥적으로 애드리브 연기를 펼치는 것 같지만 실은 모든 게 각본으로 짜여져 있다.

“어떤 관객이 올라오느냐에 따라 상황 A, B, C별로 대사가 설정돼 있어요. 조명, 무대, 음향 하나하나가 마술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대사가 정확하지 않으면 서로 맞물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는 거죠.

실수를 했을 때마저 각본으로 정해놨다. 실수로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종류의 마술이 나오도록 돼 있는 것. 실수마저도 미리 연습한다. 그래서 한 공연을 준비하는 데 보통 3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마술은 마술사 한 사람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여진 ‘각본 있는 드라마’였다. 

‘더 셜록’ 공연 한 장면. [사진제공=클립서비스]

▶당신이 모르는 마술사들의 세계=마술의 종류에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멘탈매직, 카드나 동전 등을 이용해 가깝게 보여주는 클로즈업매직, 이야기가 있는 제너럴매직, 사람이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일루전매직, 비행기처럼 큰 물체가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그랜드일루전매직 등이 있다. 최현우 매직쇼는 이러한 다양한 마술 종류들을 섞어 하나의 큰 스토리 안에서 보여준다.

‘더 셜록’은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최초의 마술쇼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연출가 오루피나와, 2011년 뮤지컬 ‘셜록홈즈’를 작곡해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 작품상 및 작곡상을 수상했던 작곡가 최종윤 씨가 참여했다.

최현우는 ‘더 셜록’ 외에도 지난해 초연한 ‘더 브레인’ 같은 마술쇼 레퍼토리들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연말에는 ‘애스크(ASK)’라는 작품을 새로 올린다.
“가수들이 히트곡을 부르면 관객들이 좋아하시는데, 마술은 그렇지 않잖아요. 안 본걸 보고 싶어 하시죠. 그래서 고민 끝에 2시간짜리 퀄리티가 되는 공연 3개를 초연, 재연 형태로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자는 게 제 생각이었죠.”

‘더 셜록’ 공연 한 장면. [사진제공=클립서비스]

그는 마술쇼는 ‘기업형’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마술사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인 세미나, 컨벤션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저작권을 거래하고, 여기서 얻은 마술의 ‘기술’을 토대로 쇼를 꾸미는 것이다.

“저 많은 마술을 최현우가 다 만들었냐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마술에도 저작권이 있어요. 저작권을 돈을 주고 사서 마술사의 연출에 맞게 새롭게 바꾸는 거에요. 노래에 작사가, 작곡가가 있는 것처럼요.”

마술 역시 자본에 의해 좌우된다. 그는 미국의 데이비드 카퍼필드(60)를 예로 들었다.

“카퍼필드 나이가 환갑인데, 여전히 톱이에요. 우리가 이기기가 힘들죠. 카퍼필드는 1년에 1000억원 정도를 번다고 해요. 재산은 수조원으로 알려져 있고요. 그는 다른 마술사들 아무도 못 쓰게 저작권을 통째로 사요. 그가 여전히 라스베이거스에서 톱 클래스의 공연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이유예요. 지난해 미국에서 카퍼필드 공연을 봤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객석 위로 유에프오(UFO)가 날아다니더라고요.”

▶“마술하고 싶다고요? 공부하세요, 정말 열심히 할 게 아니라면”=최현우는 서울고등학교 재학 시절 처음으로 마술을 시작했다. 내성적이고, 숫기도 없고, 춤도 노래도 못했던 그는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마술사가 됐다.

“카퍼필드가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고 만리장성을 통과하는 영상을 봤어요. 저렇게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일본에서 번역된 마술 책들을 구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평범했던 ‘강남 8학군’ 아이는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마술사의 길을 걸었다. 부모님의 반대에 집을 뛰쳐 왔고, 국내 최초 프로 마술사 고(故) 이흥선 씨가 운영했던 매직바에 들어가 청소, 빨래,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인성’에서 합격점을 얻은 그는 “가족 이 외에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마술의 비밀들을 하나씩 배우게 됐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다.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을 들어갔다.

“마술 행사장에 갔을 때였어요. 유명 MC분이 저를 ‘무명의 고졸 마술사’라고 소개하는 거예요. 놀랐죠. 마술하는 데 고졸이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충격이었어요. 아, 내가 대학을 안 다니면 마술사는 공부를 안 했다고 생각하겠구나. 그래서 급하게 수능 보고 학교에 들어갔죠.”

올해로 데뷔 20년. IBM(2002년), FISM(2009년) 등 세계적인 마술대회에서 수상하며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고, 이은결과 함께 한국 마술계를 양분하는 세계적인 마술인이 됐지만, 그는 마술사를 꿈꾸는 한국의 ‘해리포터’들에게 “마술은 취미로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가라”고 말했다.

“마술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 시상자로 나온 카퍼필드를 만났어요. 그에게 물었죠. 다시 태어나도 마술사를 하겠냐고. 절대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실망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마술사는 라이브로 계속 공연해야 살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다’고요. 그 분이 전성기 때 365일 중 530회 공연을 했다고 해요. 기네스에도 올라가 있죠.”

최현우는 “카퍼필드만큼은 아니지만 마술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좋아서, 정말 열심히 할 게 아니라면, 절대 시작하지 말 것. 그가 말하는 마술사의 세계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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