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양보않는’전광우 석좌교수…
두 딸 이어 막내아들도 소박한 ‘작은결혼식’ 작은 화제
전광우(67) 연세대 석좌교수가 내민 명함에는 경력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현재 재직 중인 연세대 석좌교수, 그리고 금융위원장(초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외교부 국제금융대사 등등.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헤쳐나오며 숱한 어려움을 겪은 그다. 고난의 시간을 얘기하면서도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자한 미소와 부드러운 주름 속에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환희의 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전 교수는 죽을 때까지 ‘생산자’로 살고 싶다며 일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하필 조금 고단한 날 사진을 찍게 돼 나이가 들어보인다”며 쑥스러워하는 그를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초대 금융위원장과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현재 한국경제에 대해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경제살리기를 위한 강력한 리더십과 함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민관의 요직을 두루 거친 터라 호칭이 많다. 위원장, 교수, 이사장, 박사. 그의 호칭부터 확실히 해야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직책은?
▶나름대로 다른 의미와 보람이 있습니다. 세계은행 시절은 내게 글로벌 시각을 갖게 해준 시간이었죠. 오죽하면 동네사람들은 내가 비행기 조종사인지 알았대요. 일 년에 지구 여섯, 일곱 바퀴를 돌아 다녔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와 우리금융에서 총괄부회장을 지냈는데, 최초 금융지주회사의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만드는 것도 굉장히 보람있었습니다. 또 금융위원장으로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조기 극복에 동참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국민연금에는 남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란 말을 했습니다. 국민연금이야 말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두 개가 다 필요한 조직이에요. 역대 최장수 이사장으로 기금을 키워놓은 것은 물론 국내외 투자 다변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또 국민연금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2010년 골드만삭스의 미국 뉴욕 본사를 방문했을 때 1층 로비에 태극기가 걸려있기도 했습니다. 외국 손님의 국기를 내건 건 처음이라더군요.
-(세상 풍파는 모조리 비켜간 듯 해맑은 얼굴이다. 게다가 13세에 고등학교를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너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거 아닌가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이력이나 외관상 풍기는 느낌 때문인지 ‘복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인생의 롤러코스터는 있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3세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것도 중학교 시험에 낙방해 바로 고입 검정고시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막상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몸이 아파 3년 정도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죠. 또 어머니를 15세에 여읜 아픔도 있습니다. 힘든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었던 것이지요.
-(언젠가 전 교수는 “진정한 축복은 ‘고난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을 나눌 사람이 있는 삶’일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전공한 부인 하정화(63) 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외환위기 때 세계은행 종신직이란 ‘꿈의 직장’을 버리고 귀국을 결심한 것도 더 큰 도전을 응원한 부인의 결단이었다) 부인은 어떤 분인가요?
▶집안끼리 먼저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제가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가까운 퍼듀대에 부인도 유학을 와 있었습니다. 마침 작은아버지께서 퍼듀대 출신으로 모교 방문차 왔다가 자리를 마련했죠. 그렇게 중매 반, 연애 반으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5년 새 아이 셋을 낳았습니다. 제 생애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죠.(웃음) 다만 제가 세계은행에 있을 때 출장이 워낙 많아 졸망졸망한 아이 셋을 부인에게 맡기고 집을 자주 비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제게 불평 한번 한 적 없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지금도 새벽 4~5시면 일어나 산책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물론 함께 손을 잡고요.
-(고위공직자로 재직하면서 두 딸의 결혼식을 소박하게 치른 것도 부인의 뜻으로 알려졌다) 혼기가 찬 막내아들은 결혼계획이 있나요?
▶아무도 모르게 지난 4월에 분당 집에서 했습니다. 양가 친부모님과 친지 몇몇 등 총 2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목사님이 주례를 서고 피아노 반주는 부인이 직접 했죠. 사돈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막내아들도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지켜야 한다고. 또 그것이 내 철학이고 신념이라고. 며느리가 외동딸이라 사돈에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공감해주셨죠. 그렇지만 이른바 ‘큰 결혼’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형편에 맞게, 자기 철학에 맞게 하는게 옳다는 생각입니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자녀의 결혼식을 모두 소박하게 치렀다. 사진은 지난 4월 전 교수의 분당 자택에서 열린 막내아들의 ‘작은 결혼식’모습. |
-(‘글로벌 큰 손’이란 별명에 걸맞지 않게 재산이 12억원(2013년 공직자재산 공개 기준)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돈을 ‘조’(兆) 단위로 굴리다보니 축의금 같은 현실적인 금액에 대한 감각이 없는 거 아닌가요?
▶부인이 저를 보고 진짜 작은 손이라고 합니다. 재테크를 모르는 작은 손이라고. 오른손은 크고 왼손은 작은 셈이죠. 그런 욕심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세계은행이 돈벌이 할 직장도 아니고, 1998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돌아와서는 외환위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재테크할 짬도 없었죠. 우리금융에 있을 때 비교적 월급을 많이 받았지만 이후 공직생활 하는데 돈 불릴 게 어디 있나요. 물론 기본 재테크 소양도 없었고. 한국에 와서 주식 한 주 사본 적이 없어요. 집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몇 십년째 살고 있죠.
-(확고한 생각을 삶으로 옮긴 만큼 껄끄러운 현안에도 소신을 기꺼이 밝혔다. 물론 조심스러워했다) 진경준 검사장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과거처럼 청빈한 선비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직자에게 여전히 제일 중요한 덕목은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성입니다. 몇몇의 일탈이 검소하게 지내는 대부분의 공직자에게까지 부담을 주고 국민들에게 허탈감, 박탈감을 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죠.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에서 낙마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문제에 대해서는요?
▶우리나라 인프라 프로젝트 개발 등에 가져올 긍정적 효과도 크고 국제적 위상도 높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 이런 상처가 어디 있습니까. 국제기구 생존력이라는 건 국내 조직의 기준과는 크게 다릅니다. 국제기구에서는 두 가지 소통이 안되면 낙오됩니다. 하나는 말, 다른 하나는 글입니다. 국제무대에서 자기 주장과 의사전달을 시원시원하게 할 수 있어야죠. 그래야 부총재든 임원이든 조직을 자기가 책임지고 잡고 갈 수 있죠. 그렇지 못해서 조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국제무대에서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내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이번 기회가 국가적으로 국제기구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1년 남짓 서별관회의 고정멤버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별관회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마치 서별관회의가 마귀의 집단이나 악마의 소굴처럼 비쳐지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공개적으로 하기에는 다른 나라와 통상마찰이라든지 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고 개별 기업의 내부정보사안 등 민감한 내용이 많습니다. 사실 회의 자체도 밖에 비쳐지는 것과 달리 참석자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어가며 할 정도로 매우 소박합니다.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생산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형식의 회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베트남에서 아침을 맞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시나요?
▶2014년 정부 요청으로 베트남의 미래발전 전략을 세우고 지원하는 ‘베트남 미래 비전 사업’ 총괄 추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일방적 지원이나 자문이 아니라 양국이 함께 팀을 꾸려서 베트남의 미래 비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다년 간 베트남의 정책담당자들도 참여합니다. 이를 통해 주요 핵심전략을 서로 연결지어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추진하죠.
개인적으로 세계은행 재직 당시 아시아 신흥국 발전전략 정책자문을 하면서 베트남에 해외직접투자유치에 초점을 맞추라고 제시한 인연이 있습니다. 현재 베트남 직접투자는 한국이 최대국가입니다. 베트남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험을 전수받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에게는 손재주가 좋고 비용이 적게 드는 노동력을 확보할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동시에 하노이가 너무 한국화되는 게 아니냐는 엄살이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큰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베트남과 유대관계, 협력관계가 공고해지고 한단계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의미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대원ㆍ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