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볼거리 놀거리 즐비 심심할 틈 없는…여보게, 장흥 가봤어?
애처가 고려 인종이 이름 지은 문학·충절 고장
호남 5대명산 천관산, 탐진강변 용호정, 천문대
영화 ‘축제’ 촬영지 소등섬, 장수풍뎅이 마을…
이청준·한승원·송기숙 등 걸출한 문인들 배출
회진항은 충무공의 배 12척이 재기 노리던 곳
노력島 가면 돔·농어 입질 바다낚시 손맛천국



장흥에 가면 부산, 안양, 대덕, 용산, 장평이 있다. 유치로 시작했다가 노력으로 끝난다. 장흥 안양면 여닫이 해변에는 맨부커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문학적 뿌리인 아버지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대덕읍 연지리엔 옥황상제의 면류관을 닮은 ‘호남 5대명산’ 천관산(天冠山)이 호령한다.

부산면 용반리에는 탐진강변 효자 스토리를 품은 용호정이, 용산면에는 하늘로 승천한 용과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와 영화 ‘축제’ 촬영지 소등섬이 있고, 장흥 북동쪽 장평면에 가면 농공단지 북쪽 산아래 지렁이 마을이 안착해 있다.

회진 북쪽 대덕읍 천관산은 능선과 산봉우리에 사자, 부처, 기(게)바위 등 기암괴석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호남의 5대 명산이다.

지렁이 마을 서쪽, 장흥 최북단 유치면에는 장수풍뎅이마을이 있고, 유치고인돌공원 남쪽 심천을 거쳤다가 기양 방촌을 지나, 이청준 작가의 고향 회진면에 이르면, 노력항(港)이 장흥 최남단을 차지한다. 성하의 절정기, 탐진강변에서는 어른도 동심에 빠지는 한 바탕 물 축제가 벌어졌다.

길게 흥할 ‘A to Z’ 문림의향 장흥

없는 게 없는 장흥이다. 고려 임금 셋(의종,명종,신종)을 낳은 공예왕후의 고향인데, 애처가인 인종이 ‘길게 흥하라’는 뜻으로 ‘장흥(長興)’으로 이름지었다. 그래서뭐든 풍족한 것일까.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의 무더위를 날려버린 물축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장흥의 매력이 ‘1’이라면 나머지 0.917은 무더위가 한 풀 꺾일 무렵, 큰 비 온 뒤의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부산, 안양, 대덕, 용산 등과 이름이 같은 읍ㆍ면ㆍ리를 대량 보유한 점은 산ㆍ강ㆍ바다, 선사ㆍ고대ㆍ중세ㆍ근대의 자취, 문학에서 부터 개구진 놀거리 까지 ‘A to Z 장흥’의 다양한 매력을 말해주는 듯 하다. 장흥의 대표적인 별호는 문림의향(文林義鄕), 즉 문학과 충절의 고장이다. 고을의 반의반이 문학관광기행특구이다. 관동별곡 보다 25년 앞선 관서별곡 지은이 백광홍(1522~1556)의 고향이고,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이 뒤를 이었다.

아침 저녁 산들 바람이 건듯 불어와 장흥 문학의 향기가 서서히 제 맛을 낼 시절이 왔다. 책 한 권 쯤 끼고, 거북바위, 책바위, 천관산 등정을 위한 등산화와 래쉬가드 한 벌에 수영복도 챙겨 장흥 버라이어티 문학기행을 떠나기 좋은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회진면 신상리의 이청준 생가에 들어서면 ‘하늘과 땅이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씨 소설이요’라는 우찬제-이윤옥 평론가의 글귀가 반긴다.

(위부터) 영화‘ 축제’의 촬영지인 소등(小燈)섬, 문학마실길 이청준 생가 입구의‘ 눈길’,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독서하는 나그네.

“청준아, 부디 몸 성히 지내거라”

방안에 꽂힌 ‘눈길’, ‘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키 작은 자유인’ 등 명작들이 추억을 일깨운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밀양’의 원작 ‘벌레이야기’와 임권택의 명작 영화로 거듭난 ‘축제’ 도 보인다. 밀리언 관객시대 처음 연 ‘서편제’는 단편집 ‘눈길’에 포함돼 있다.

이청준의 문학적 천재성은 힘겨운 고향의 서정과 어머니의 사랑이 뒤엉켜 나타난다. 그는 광주일고 2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 장흥 고향집이 빚쟁이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방학이 되자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아들이 저간의 사정을 눈치를 챈 것 같아 방학 직후 매입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마치 집이 그대로 있는 것 처럼 꾸미고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 재운다. 청준은 알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새벽 눈길을 따라 다시 광주로 향한다. 소복히 쌓인 마을 눈길을 청준이 가장 먼저 밟는다. 어머니는 아들의 첫 발자국에 자신의 작은 발을 조심스럽게 내리며 따라간다. 발자국에 남은 청준의 미미한 온기라도 느끼고 싶은 모정이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돌아오는 어머니는 다시 아들의 발자국에 흡집이 나지 않게 밟아 보지만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발자국 사이 사이에 떨어지고 만다.

이청준은 이때의 기억을 모티브로 청년 걸작 ‘눈길’을 낳았다. 자신과 사회 모순의 편린을 씻는 ‘씻김굿’이었다. 눈 쌓였던 마을 골목길은 이제 회진항 문학마실길이 되었다.

그가 사랑한 회진앞바다는 충무공의 의로운 배 열두척이 정박해 재기를 노리던 곳이다. 회진은 문림(文林)이자 의향(義鄕)이다. 잠시 배로 회진항을 떠나 노력도 쪽으로 20여분쯤 가면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이 훈련하던 곳을 만나는데, 지금은 바다낚시터이다. 고기잡이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낚시대를 드리우고 이청준의 ‘말없음표의 속말들’을 읽다보면, 돔과 농어가 입질을 한다.

천관산 트레킹에도 기승전-책

회진 북쪽 대덕읍 천관산은 능선과 산봉우리에 사자, 부처, 기(게)바위 등 기암괴석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호남의 5대 명산.

거북바위에 이르러 탁 트인 전망을 얻는다. 맑은날 제주도까지 보인다는데, 8월초 높은 습도는 허락하지 않았다. 거북바위에서 북동쪽으로 능선을 타고 800m쯤 가면 책(冊)바위를 만난다. 책꽂이도 없는데 거대한 책들이 꽂혀있고, 두어권은 꼿꼿이 서있는 큰 책들에 기대어 있어 정겹다. 거북바위 서쪽으로 가면 수백개 돌탑과 문학비로 조성된 천관산문학공원을 만난다. 산꼭대기 문학이다. 거북바위에서 조금만 보이던 바다는 동쪽 능선 끝자락에 이르자 흉금이 상쾌한 다도해 풍경을 허락했다.

23번 지방도로를 따라 북행하기 전에 동편 해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보성 득량도와 고흥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등의 섬을 조망할수 있는 46m 높이의 정남진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10층짜리 문화생활 멀티플렉스 꼭대기에서 천관산보다 더 가까이 남해를 굽어볼수 있다. 용산면 조선백자 도요지를 지나 우회전하고 다시 동편 안양면쪽 해변으로 가면 세계최고 반열 문학가로 등극한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문학산책로를 만난다. 소록도로 강제 이주되던 환우들이 잠시 쉬던 여닫이해변(수문해수욕장) 바로 옆이다.

멘부커 한강의 상상력이 풍부한 이유

한승원은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가증스런 바다’ 등 묵직하고 짙은 서정의 소설 뿐 만 아니라 ‘종려나무길 따라 오신 당신께’, 도깨비와 늙은 어부 간 밀당을 그린 ‘내 할아버지 이야기’, ‘새벽달’ 등 동화, 동시, 수필까지 섭렵한 팔방미인 문학가이다. 한강의 풍부한 상상력은 아버지 전방위 문학DNA 덕분이다. 둘은 사상최초 부녀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강이 멘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지난 5월 한승원은 김성 장흥군수와 저자거리에서 대포 한잔을 하다가 김 군수로부터 “딸이 상 받으면 한턱 쏘라”는 취중제안을 받고 흔쾌히 취중응락을 한다.

수상이 확정된 뒤 딸은 극구 잔치를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그 대폿집 약속이 께름칙해 딸 없이 소연이나 하자고 소찬을 준비했다가 소문을 들은 군민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수백명 잔치를 벌여주었다고 한다. 한강의 겸손과 일이 저질러진 후 보인 한승원의 통큰 한턱도 모두 따스하다.

용(龍)이 승천 포기한 소등섬과 힐링 우드랜드

장재도를 사이에 두고 한승원 문학산책로와 마주하고 있는 ‘축제’ 촬영지 소등(小燈)섬은 썰물 때 슬라이스로 휘어진 길을 따라 다다를수 있는 깜찍한 섬이다. 서울 광화문과 경도(經度)가 같은 정남진(正南津) 표석이 있다. 호롱불을 켜놓고 어부의 무사귀환을 비는 여인들을 위해 용(龍)이 승천하지 않고 기다려줬다는데, 그 용 참 귀엽다.

안양면에서 장흥읍내쪽으로 가는 길목 억불산 자락에는 피톤치드-음이온 생산공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가 있다. 100㏊에 이르는 편백나무 숲 사이로 웰빙 스테이를 할 수 있는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이 착상했다. 천관산 기슭 문학공원과, 회진ㆍ수문 해변에서 수필과 시를 읽었다면, 이곳에서는 긴 단편, 짧은 장편 소설을 읽을 만 하다. 아이들은 목재문화체험을 하는 동안 어른은 편백 사이 나무테크를 따라 산책하고, 밤에는 편백소금집 찜질방에 모두 모이면 되겠다.

문학관광특구 장흥에는 유치고인돌 공원, 천문과학관, 녹차마을, 어촌체험장, 해수욕장, 휴양림, 오토캠핑장, 골프장, 연곡서원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넉넉하다. 장흥은 마음을 씻고, 올바른 마음을 갖는 방법과 실천양식이 어떠한지 잘 아는 문림의향(文林義鄕), 맞다.

함영훈기자/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