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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스의 남자들’ 코디최ㆍ이완을 만나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선정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간 국내에서 전시 활동이 활발한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나서게 됐다. 코디 최(Cody Choiㆍ55)와 이완(37) 얘기다.

코디 최와 이완 작가가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2017년 5월 13일~11월 26일)’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다.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작가로 참여한다는 건 미술인들에게는 가장 돋보이는 ‘스펙’ 중 하나다. 이미 실력을 갖춘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발판이 비엔날레이기 때문이다. 

코디 최(왼쪽)와 이완 작가.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내년 한국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이대형(42) 씨가 예술감독을 맡는다. 이대형 예술감독과는 물론, 작가끼리도 일면식이 없었던 이들의 조합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9일 코디 최 작가를 PKM갤러리에서, 10일 이완 작가를 합정동 작업실에서 각각 만났다. 내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두 작가의 협업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그간 해 왔던 두 작가의 작업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사진제공=PKM갤러리]
Delirium Trigger Red [사진제공=PKM갤러리]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회고전 전시 전경. [사진제공=PKM갤러리]


▶코디 최, ‘문화 정체성’과 싸우다=“1990년대 초였나. 이대형 씨가 학생시절 홍대에서 제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대요. 그 때 큰 감동을 받아 저를 기억하고 있었고, 베니스비엔날레 제안서를 만들고 있다며 저를 찾아왔더라고요.”

코디 최는 전시를 통해 만나기 힘든 작가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다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PKM갤러리가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현재 그의 작품 90여점으로 꾸려진 대규모 회고전이 순회전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2015년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렸다. 미국, 중국 미술관들과도 순회전을 협의중이다. 

코디 최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재학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LA아트센터 칼리지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0년 넘게 미국에서 살며 작업활동을 해 왔고,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맹목적 서구화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문화 정체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코디 최 작가.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오래 해 왔다. 미국 뉴욕대학교 객원교수(1994~2004)로 재직했고,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도 했다. 교재로 쓰기 위해 집필했던 ‘20세기 문화 지형도’(2006)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다. 이 때문에 미술가보다는 문화이론가로서 더 알려져 있기도 하다. 

“외국에는 저 같은 작가가 많아요. 작업하면서 강의도 하고, 이론에 관한 책도 쓰고.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작가는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는 사람, ‘쟁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미술계에서 코디 최에 대해 “그 작가 엄청 똑똑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오랜 사유에서 얻어진 작가적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내 놓기 때문. 그의 작업은 직접 삶에서 경험했던, 혹은 투쟁했던 것들의 학술적, 시각적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ㆍ1996)’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제 소화제 ‘펩토비스몰’ 수만통으로 적신 화장지를 뭉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TV가 귀하던 어린 시절, 그 때 방송은 70~80%가 미국 드라마였어요. 월트디즈니 만화부터 주말의 명화까지, TV만 틀면 서양사람이 나와 한국말(더빙)을 하죠.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저는 서양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는 줄 알았어요. 중학교를 들어가서 제일 먼저 보게 된 건 미국여자의 누드였어요.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같은 거요. 충격 받았죠.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됐어요. 서양 여자들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걸. 미디어의 ‘저질정보’가 미(美)의 기준을 결정했던 거죠. 대학을 들어갔더니 전부 원서를 읽으라고 하대요. 정작 원서는 영어가 아니라 독어인데 우리는 영어를 원서라고. 하하하. 미국가서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우리 모두 서양문화에 대한 환상 속에 살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환상은 미국인으로 살아야 했던 시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특히 유학생이 아닌 이민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유학생들은 마음의 뿌리를 한국에 둬요.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든 건 피해가고 ‘선택적 청취’만 하죠. 그런데 저는 이민자니까. 이제부터 미국사람이다 생각하고 살아야 했어요. 그 안을 들어가려고 무던히 노력했죠. 그런데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결국 병이 났다. 오래도록 위장병을 앓게 됐다. 그래서 먹게 된 게 소화제다. 그리고 이 소화제를 작품의 소재로 옮겨가게 됐다.

공부도 시작됐다. 우리와 그들은 다를 수 밖에 없고, 모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제일 싫어하는 게 아이디어에요. 요새 젊은 작가들 작품을 보면 감각적 아이디어가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미술 작품은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자기 삶을 통해 자기만의 철학과 체계를 만들기 전까지는 그저 연습을 하는 과정인거죠.”

미국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에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됐다. 강남 어느 식당 메뉴판에서 본 ‘고급 한우 비프 스테이크’ 같은 국적불명의 외계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고, 이 때부터 간판을 소재로 한 작업들을 시작하게 됐다. 노자와 장자를 다시 읽고 공부하며 재해석한 작업도 나왔다. 한국에 와서 발견된 문제들을 파고 들게 된 것. ‘문화 충돌’은 여전히 그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이후에는 고민이 더 많아졌다. “큰 틀에서는 좋은 일이고, 작가로서 기회가 왔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행여 허황된 것에 마음을 뺏길까봐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미안해요. 비엔날레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런 곳에 나갔다 왔다고 폼잡지 말라는 얘기를 수천번은 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제가 하게 됐으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네요.”

2014년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한 ‘메이드 인’ 시리즈 영상 한 장면.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한국 여자’ [사진제공=이완]
‘Product’ 시리즈 [사진제공=이완]

▶이완, ‘불가항력’과 싸우다=이완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2014) 수상자다. 2001년부터 격년제로 열리고 있는 아트스펙트럼은 국제 무대에서 성장할 경쟁력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대표적인 전시다.
그런데 이완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디올’이 지난 4월 연 미술전시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였다. 광주 충장로 번화가를 배경으로 젊은 여성이 디올 토드백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찍은 이 사진은 ‘김치녀’ 같은 여성 혐오 메시지로 읽히며 한동안 온라인을 들끓게 했다. 

그러나 디올 측에 의해 이 작품이 내려지면서 논란은 빠르게 식었다. 논란은 논란으로 소비됐을 뿐, 생산적인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확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이상했죠. 이 이슈를 통해 우리 미술계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는 “한국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시각, 같은 여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들이 충돌하며 한국사회 내부에 꽉 차 있었던 압력이 터져 나왔던 것”이라며 “제 작품이 그런 작용을 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이슈를 슥 가져다놓고 공론화 시키는 것, 작가는 욕을 먹겠지만 그것이 작가의 역할 아니겠냐”는 거다. 

담론의 장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작품은 팔렸다. 그것도 세계적인 슈퍼리치 컬렉터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LVMH 회장이 사 갔다. 

이완 작가.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이완은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불러 온 사회적 현상들을 파고 드는 작가다. 디올 작업 역시 상위를 욕망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취향없는 소비 문제를 건드린 작업의 일환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불가항력’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의해 어쩔수 없이 선택되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다.

“내가 입은 옷, 내가 마시는 커피,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 내가 선택한 것들일까요? 우리는 커다란 인공 구조물 안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벗어날 수가 없죠.”

그는 대형마트를 상징적인 구조물로 생각했다. 수많은 제품을 선택, 구매할 수 있지만 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생산품들이라는 것.

그래서 시작된 게 마트 작업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재가공하고 다시 이것을 담론으로 소비시키는 방식이다. 생닭을 갈아서 야구공으로 만든 작업(2008)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패권주의에 대한 리서치도 계속해 나갔다. 이는 ‘메이드 인’ 시리즈로 확장됐다. 아트스펙트럼 수상 계기가 된 작품이다.

작가는 상품에 쓰여진 원재료들을 추적했다. 대만, 태국, 미얀마 등 원재료를 생산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 현지 제작 과정과 결과물을 영상, 설치로 풀었다. 한끼 아침식사를 만들어보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아침식사마저 글로벌 정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아시아 지역의 근대화, 산업화에 깔린 식민주의까지 건드리게 됐다.

“언젠가는 다 똑같아질 것 같아요. 문화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가치관도 점점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똑같은 걸 소비하고, 똑같은 걸 좋아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겠죠.”

최근 작업은 ‘메이드 인 코리아’ 시리즈다. 주로 “전통은 없다”는 주제를 다룬다. 한국민속촌에서 짚신을 만드는 장인은 실은 진짜 짚신 장인이 아닌 민속촌 직원이며, 그로부터 작가가 직접 짚신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단절된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1960~1970년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효자 수출상품이었던 가발산업도 들여다봤다. 1세대 가발 노동자를 만나 가발 만드는 법을 배웠고, 3년 동안 기른 자신의 머리를 잘라 직접 가발을 만들었다.

‘부처님 38만원’, ‘비로자나불 35만원’ 등 황학동 시장에서 발견한 종교 상품들을 찍은 사진은 최근 ‘프로덕트(Product)’ 시리즈의 대표작이다. 지난 3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내놨다가 역시나 신성모독죄로 ‘난리’가 났었다. 정작 주최 측에서는 “오늘날 종교문제를 꼬집는 작품 잘 봤다”고 했단다.

작품 세계 뚜렷한 ‘뜨는’ 작가에서 국내 메이저 갤러리들의 러브콜이 잇달았다. 매년 수천만원의 지원금과 작업실까지 제안한 곳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고민하는 데 10초 정도 걸렸다”고. 작가는 현재 313아트프로젝트에만 ‘느슨한 연대’ 형식으로 전속돼 있는 상태다.

“갤러리를 통해 판매될 작품들을 고민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두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까지는 저를 있는 그대로 두고 싶어요.”

개성 강한 작가지만 “베니스는 두 명의 개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구분지었다. 오히려 베니스비엔날레는 “기획자의 전시이고, 그 기획에 맞게 작업을 조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여기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작업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베니스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려는 큰 욕심 같은 건 없어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양보하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맞춰가고 싶어요.”

이대형 예술감독에 대한 신뢰도 드러냈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이미 자신이 결과를 정해 놓고 작가들을 동원하는데, 이대형 씨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아요. 그리고 작가의 작업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기획의 맥락 안에 정확하게 가져가죠. 뛰어난 큐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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