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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권용국 논설실장] 김영란 법과 평온한 절망
김형. 이제 두달도 채 남지 않았군요. 김영란법 말입니다. 처음 이 법의 주요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걸 알았을 땐 참 못마땅했습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라면 한 수 위인 의원님들이 쏙 빠졌다는 게 더 화 났지요.

김영란법이 경제위기의 기폭제가 되리라는 한 경제연구원의 전망에 공감하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음식업, 골프장, 선물 등 10조원 넘는 손실이 발생하고 경제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건 따지고 보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얘깁니다. 그 비용이 어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손해보는 곳이 있겠지만 이익보는 곳들도 생겨납니다. 문닫는 고급 한정식집 대신 중저가형 음식점은 지금보다 나아지겠죠. 그게 경제지요.

1988년 UIP 직배 영화가 처음 들어올때 한국 영화는 다 망한다고 들끓었지요. 오늘날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제가 유명무실할만큼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요즘 한우가격 올라가는 걸 보면 2008년 쇠고기 수입개방 당시의 시위 소요사태가 왜 있었나 싶습니다 . 그때만 해도 소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길바닥에 나앉을거라고 걱정했었지요.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지도 모른다는 대목에선 부끄러움을 참기 어렵네요. 자기 돈 안들이고 관광까지 곁들인 해외출장중에는 알릴만한 정보가 없던 적도 많았습니다. 내가 먼저 하자고 팔 비트는 게 아니라면 홍보인들과의 골프는 선선히 응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소개를 빌미로 엮은 술약속은 글쎄요. 그들이 계속 친하게 잘 지낸다는 얘길 들은 게 별로 없습니다. 맛집 순례하자며 대기업 홍보실 사람 불러내서는 같이 즐기는 거니 서로 좋은 거 아니냐고 웃은 적도 셀 수가 없네요. 명절때 일면식도 없던 기업의 CEO가 보내온 선물에 고맙다고 인사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군요. 비서들이 명단 구해다가 기계적으로 돌린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쩌다가 밥값을 내기도 했죠. 난감해하는 홍보인들을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남들하고 다르다고 자위할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엔 옛날처럼 촌지가 없으니 언론계도 많이 깨끗해졌다고 좋은 시절 추억하듯 얘기하면서 데스크를 거쳐 국장이 되고 논설위원까지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먼지가 쌓이듯 글은 무뎌졌고 무엇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정보인지 선택하는 감각도 둔감해졌습니다. 많이 읽히는 기사를 쓰라고 후배들을 다그치면서 좋은 기사 쓰라는 얘기는 생략하는 선배가 되어있었습니다. 

김 형. 혹 이 고백서가 그동안 잘 지내던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겠다는 걸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으로 비판적인 글로 재무장하겠다는 출사표는 더욱 아닙니다. 다만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너무나도 철저하고 순진하게 관례라는 이름으로 지금과 같은 삶을 믿고 따르며 살아가다보니 ‘평온한 절망’속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됐을 뿐입니다. 김영란법이 그걸 일깨워줬습니다.

뭔가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길은 얼마든지 있고 변화는 기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같이 그걸 찾아야겠지요.

권용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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