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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만나다
-정명훈, 서울시향과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아휴, 우리나라에 그런 보험이 어딨어요.”

4년 전 쯤,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국내 한 보험사 광고에 등장했다. 보험사 관계자에 따르면 광고 촬영 당시 ‘우리나라에 그런 보험이 어딨느냐’는 말 한마디를 끌어내기 위해 꼬박 하루가 걸렸다. “대본에 쓰인 대로는 못 하겠다”는 정 전 감독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대사를 할 수 있게끔 유도해달라 주문했고, 덕분에 스태프들은 하루 종일 진땀을 빼야 했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감독이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리허설을 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고집있다”, “진심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음악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정명훈은 베를린필, 런던심포니, 빈 국립오페라, 밀라노 라스칼라 등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향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음반 계약을 맺는 등 오케스트라를 세계 정상급으로 키웠고,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를 ‘세일즈’하는 데는 소홀했다. 해외보다 국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더 박했다. 특히 서투른 한국말 때문에 때로 오해를 사고 때로 누리꾼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정 전 감독이 8개월만에 서울시향 단원들과 만났다.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에서 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기자들과도 만났다. 본 공연에 앞서 16일 언론에 리허설 모습을 공개했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재임 시절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이벤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소통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최근 경찰 수사에서 ‘항공료 횡령’ 무혐의 결론을 받았기 때문인지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어눌한 한국말은 여전했다. “오늘도 분명 굉장히 (말)실수를 했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감독.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명예훼손 등 현재 진행중인 소송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단호하게 “지금은 말할 가치가 없다”며 “모든 건 검찰 조사가 끝난 후에 다시 물어봐달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전 감독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8개월만에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보니 어땠나.

▶오래 함께 일한 음악가들이어서 호흡이 맞고 그런 건 예나 다를 게 없었다. 다시 만나 반갑고, 또 새로운 클래식홀의 개관 콘서트를 하게 돼 기쁜 마음이다.

-롯데홀의 음향 수준은 어떤지.

▶첫 리허설이어서 아직 조정할 게 많다. 홀은 충분히 훌륭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홀이 생긴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청중이 들어오면 어떻게 변할지 봐야한다.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오픈했을 때 2700명이나 들어갈 정도로 워낙 장소가 커서 처음에는 성악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파바로티와 오페라를 함께 하게 돼서 소리 테스트를 해 봤더니 너무 잘 나오더라. 진짜 숙제는 연주자들에게 있다. 이 곳은 훌륭한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곳이다.

-현악 파트의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나.

▶레코딩은 오케스트라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보통 연주를 준비하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해야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훈련에 굉장히 도움을 준다. 서울시향이 이만큼 올라온 것도 레코딩 과정을 통해서다. (그런데) 올라오는 거는 지독히 힘들고 내려가는 건 너무 쉽다. (서울시향은 생상스 교향곡 3번과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을 녹음할 예정이다)

-내려가는 건 쉽다고 했는데, 그간 어려운 일을 겪으며 심정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생각 안 한다. 오히려 몇 가지를 배웠다. 훌륭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악가 자신도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 서울시향도 기술적 수준은 올라갔지만 한단계 더 올라가려면 휴먼 퀄리티(Human quality)가 올라가야 한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됐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나라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 기회였다.

-서울시향에 감독으로 복귀할 생각은 전혀 없나.

▶60살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해 왔다. 물론 음악은 그만 둘 수 없다.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음악을 통해서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책임을 자꾸 맡으면 무거우니까. 시향에 있을 때 객원 지휘자들과 달랐던 것은 좋은 연주 뿐만 아니라 기초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했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고쳐야 했다.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60살이 되면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2년 늦게 그만뒀다. 지금은 다시 그런 책임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도 정명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면.

▶개인적인 목표는 음악을 통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뭘 해야하는지) 찾기가 힘들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좀 더 쉽겠다. 책임은 못 맡지만 그건 할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을 다시 만나게 됐는데 소감은.

▶우리에게는 청중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들려줘야 한다. 외국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마다 나는 한국 청중들을 자랑한다. 얼마나 뜨겁게 음악을 좋아하는지. 열정적인 반응도 그렇고. 한국 무대에 설 때마다 한국의 청중들을 외국 사람들한테 자랑한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항상 감사하다는 말 밖에 없다.

-현재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 중인데.

▶잠깐만. 그거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가 없다. 오래동안 기다렸던 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저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모두 ‘감사하다’는 한마음으로 연주할 거다. 다른 거는 말할 가치가 없다.

-부인은 언제쯤 귀국하는지.

▶모든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도 질문이 있으면 그 때 대답을 하겠다.

-이번 롯데 콘서트홀에서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주를 할 건가.

▶연주를 준비할 때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 안에서는 이 작곡가를 위해서 이 곡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살아있는 음악, 작곡가가 지금 방금 작곡해서 청중에게 처음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연주한다.

-홀에서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훌륭한 홀인지는 1년은 기다려야 안다. 홀도 시간이 필요하다. 비엔나의 무지크페라인(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장) 같은 경우 아무나 가서 연주해도 굉장한 소리가 나온다. 저는 그런 홀보다도 연주가에게 책임을 많이 주는 홀이 좋다. 진짜 잘해야만 좋은 소리가 나오는 홀. 우리 책임이 크다.

-소송에 대해 말할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다. 정확하게 말해달라.

▶그걸 못 알아 들었다고 한다면 더 말할 가치가 없는 거다. 플리즈(Please). 이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시향이 지독하게 피해를 받았다. 10년 동안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소송이) 얼마나 굉장히 일이길래 시향을 깨야 하나. 그거에 대해 제가 대답하라고? 노(No). 결과를 기다려달라. 할 수 없다. 그 다음에 다시 한번 만나자.

-한국의 다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생각도 있나.

▶책임은 싫다. 객원 지휘로는 부산 소년의집 관현악단도 몇년동안 도와준 일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언제라도 하겠다. 나라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아무나 요청해달라.

-한국말이 서툴러 전달하고자 하는 게 표현이 안 되지 않나.

▶굉장히 답답하다. 경찰 조사 받을 때 다들 너무 늦게까지 일하길래 불쌍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큰일난다더라. 내가 말을 실수한거다.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해야하는데. 말 때문에 힘들다. 오늘도 굉장히 실수를 했을 거다. ‘말 할 가치가 없다’는 것도 틀린 거 같다. (진짜 뜻은) ‘Not necessary to talk about’인데. 어제 일어난 일이면 몰라도 1년 반 전 일이니까. 제가 이런 인터뷰 힘들어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궁금한 게 많으신 거 이해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시간 맞춰서 다시 기회 드리겠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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