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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상식을 깼다’… LG전자 ‘초고가 가전’의 비밀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베블렌 효과’란 사치품의 경우 비쌀 수록 잘 팔리는 사회 현상을 말한다. 개인의 과시욕과 허영심은 ‘싸고 질 좋은’ 제품보다 ‘비싸도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개인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했던 당시 미국의 주류경제학은 소스타인 베블렌이 제시한 ‘개인은 비합리적’이란 가정에 맹폭을 퍼부었지만 ‘베블렌 효과’는 여전히 경제학 용어로 살아남아 있다.

LG전자가 지난해 말 만든 초(超)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SIGNATURE)’는 베블렌 효과를 거스른다. 꼭 사치품이 아니더라도 비쌀 수록 잘 팔릴 수 있다는 점이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들고 다니거나 타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명품이나 사치품이 아니라도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의미의 ‘신(新) 베블렌 효과’를 LG전자가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주말 LG베스트샵 서울 학동점. 한 중년 부부가 77인치 올레드(OLED) TV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은 “기가 막힌다”고 했고, 여성분은 “좋기는 하네요”라고 말하며 시선을 가격표로 옮겼다. 이 TV의 가격은 4100만원이다. LG전자는 지난달 19일 이 TV를 출시했다. TV 한대 가격이 준대형 승용차 가격 보다 비싸다. LG전자 관계자는 “판매 대수를 공개키는 어렵다. 전략 노출 때문이다. 초기 시장 반응은 아주 좋은 편이라고만 말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가 ‘말도 안되는(?) 가격’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은 자신감의 반영이다. LG전자는 올해 2분기에 매출 14조29억원, 영업이익 584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5%, 영업이익은 139.5% 성장한 것이다. 상반기 누적 기준으로는 영업이익 992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5493억원)와 비교하면 1년 새 거의 100% 성장했다.

고가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자 영업이익률도 큰폭으로 개선됐다. 올해 2분기 LG전자 생활가전 부문인 H&A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은 9.2%였다. 전분기(9.7%)에 이어 두개 분기 연속 9%가 넘는 영업이익률 달성이다. TV부문인 HE사업본부는 분기 사상 최고 영업이익률도 기록했다. 이는 세계 주요 가전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 수치다. 미국 월풀의 영업이익률은 6.5%,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는 4.5%다. 가전은 여타 제품보다 인건비 비중이 높아 영업이익률이 5%내외에 머무는 것이 통상이다.

LG전자의 초프리미엄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는 것은 불황 덕분이란 역설적 설명도 가능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진행되면 소비 시장은 가격을 기준으로 양극화 현상이 빚어진다. 아주 비싼 제품과 아주 싼 제품만이 살아남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주 싼 제품 시장은 거의 중국산 제품이 잠식중이다. LG전자의 초프리미엄 전략이 탄생한 배경이자, 초프리미엄 시장을 LG전자가 본격 공략하기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초프리미엄 가전 시장은 성장성도 크다. 글로벌 산업분석 전문기업 IHS에 따르면 전세계 가전 시장 규모는 약 500조원 가량이다. 이 가운데 5% 가량이 초프리미엄 시장으로 분석된다. 또 미국 프렌치도어 냉장고 가운데 3500달러 이상 비중은 2013년대비 올해는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미국의 초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은 일반 빌트인 시장 대비 성장율이 3배이상 높다”고 말했다.

LG전자 시그니처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위원회’가 디자인을 결정하면 해당 디자인은 양산단계까지 절대 변치 않도록 했다. 기존엔 디자인이 결정되더라도 조금씩 양산 단계에서 개발 부문과 함께 논의하며 변하기도 했다. 디자인위원회에는 생활가전 총괄 조성진 사장과 최고기술책임자 안승권 사장, TV 총괄 권봉석 부사장 등이 포진해있다.

혁신성도 제품 내에 녹였다. 예컨대 LG 시그니처 냉장고는 사용자가 다가가 발을 가까이 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냉장고 문을 두 번 두드리면 내부 조명이 켜지면서 유리문을 통해 속을 볼 수 있다. 최근 LG전자는 미국 내 빌트인 제품 유통 채널을 600여개까지 늘리고 현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등 프리미엄 마케팅을 강화하며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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