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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대선을 앞둔 과제
한국을 오랫동안 경험했던 미국 학자 그레고리 헨더슨(G. Henderson)은 한국정치를 ‘소용돌이’에 비유했다. 한국 정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그의 책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1968)’를 범박하게 정리한다면, 한국정치의 모든 현상들은 중앙권력으로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권력에의 참여를 대신할 만한 만족스러운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강구하며 중앙권력을 향하는 것이 야심가들의 유일한 목표가 됐다”고 진단한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대권을 향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대권투쟁은 한국정치에서 일종의 블랙홀 같은 것이다. 한국정치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의 이런저런 분란과 갈등의 근저에는 대권장악의 욕망이 숨어 있다. 야권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정권교체의 열망 역시 본질은 대권투쟁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의 행동과 판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정식에 있는 것이다.

국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국민은 정치구조나 제도보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전히 인물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각 정당이 어떤 후보를 내세울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유권자들의 이런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대권경쟁이 치열한 만큼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찾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고에 밑바탕엔 인물 대망론이 깔렸다. 대통령이 달라지면 뭔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능을 감안할 때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니다. 지난 3명의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이나 통치형태는 너무나 다른 것이고, 그것이 가져온 정치적 차이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출발했다가 식물 대통령으로 끝나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독선적 태도와 소통 부재, 인사 파동과 측근 스캔들, 그리고 레임덕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5년 단임제의 제도적 한계라 얘기하지만, 단순히 제도적 문제라 보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이 숨어있다.

무엇보다 권력구조상 대통령제는 국회의 견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성공적인 국정운영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국회, 특히 야당의 협력이다. 국회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대통령도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다. 정치적 양극화와 지역주의도 대통령의 대표성을 약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관료통제 역시 만만찮은 일이다. 청와대가 시킨다고 무조건 복종하던 시대는 지났다. 막강한 권한의 중앙부처보다 근무환경이 좋은 자리를 선호하는 게 요즘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다. 5년짜리 아마추어 정권으로 60만의 노회한 공무원들을 제대로 부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 ‘누가 적임자인가’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적합성의 기준이 생략됐다. 개인적 유능함과 깨끗함과 같은 절대적 기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국의 정치상황과 통치환경의 독특함이다. 유치원 보모와 군사령관이 동일한 기준에 의해 선택될 수 없듯,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정치현실과 미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선택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고민이 부족한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대선의 열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한국 대통령이 헤쳐 가야 할 정치현실과 통치환경에 대해 진지하고도 면밀한 논의이다. 이를 통해 적임자의 기준도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현안에 빠져 더 중요한 과제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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