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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서운 노인들 ①] ‘할머니 사기단’ 등장…엽기ㆍ지능화하는 고령범죄
-노인 강력범죄 10년 새 5배 급증…노인이 피해자인 경우도

-고령층 범죄 피해자도 지속적으로 증가 “대응책 마련 시급”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1. 올해 초 값싼 중국산 약재를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노인들에게 판매한 ‘할머니 사기단’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총책ㆍ판매책ㆍ운송책ㆍ바람잡이 등으로 역할을 각자 분담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수법도 치밀했다. 할머니 사기단은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 노인들의 사정을 고려해 범행 장소를 아예 은행 앞으로 정했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범죄대상을 물색하고 단속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사진= 국내 인구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노인 강력범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범죄 피해자 가운데 고령층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 지난 3월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만난 50대 여성과 성관계 도중 동영상을 몰래 촬영하고 “남편에게 공개하겠다”며 지속적으로 협박하고 돈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67) 씨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1년을 확정했다. 이씨는 총 76회에 걸쳐 이 여성에게 문자 메시지, 나체사진, 성관계 동영상 캡처 사진 등을 전송해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인구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노인 범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후 준비 미비로 인한 생활고와 각종 IT기기의 보편화로 노인 범죄 유형이 점차 지능화ㆍ흉포화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자료에 따르면 살인ㆍ강도ㆍ방화ㆍ성폭력 등 흉악 강력범죄를 저지른 61세 이상 노인 범죄자는 2005년 402명에서 2014년 1993명으로 10년 사이 5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1%에서 6.7%로 크게 늘어났다.

전체 연령대로 비교해 보면 50대 강력범죄자는 2005년 7.5%에서 2014년 14.4%로 2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30, 40대 강력범죄자는 같은 기간에 비중이 3~7%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일반 폭력범죄와 재산범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2005년 발생한 폭력범죄와 재산범죄에서 61세 이상의 비중은 각각 3.4%, 4.5%였지만 2014년에는 7.5%, 8.7%까지 치솟았다.

한편 범죄 피해자 중에서도 고령층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으로 꼽힌다. 형사정책연구원이 분석한 ‘형법범죄 피해자 연령 분포’를 보면 61세 이상 범죄 피해자는 2005년 4만4728명에서 2014년 9만26명으로 약 10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피해자가 62만1879명에서 90만5094명으로 45.5% 늘어난 것보다 증가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 같은 노인범죄의 흉포화 현상은 한국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4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형사 처벌 범죄자의 18.8%가 65세 이상이었다. 20년 전인 1995년(3.9%) 보다 4배 증가한 것으로, 같은 시기 노인 비율이 14.6%에서 25.9%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걸 고려해도 폭발적인 증가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노인 범죄가 폭증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폭주노인(暴走老人)’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일본 경시청은 지난해 상반기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의 범죄율이 1989년 이후 처음 미성년자를 앞섰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의 증가 이유로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고립 등을 지목한다. 지난 2013년 경상대학교 박사논문인 ‘노인문제의 원인 분석 및 대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팀이 총 6만8837건의 노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노인범죄자의 범행 동기를 분석한 결과 ‘현실불만’을 지목한 노인이 367명(0.5%), 우발적인 원한, 분노 등을 지목한 노인은 9096명(13.2%)을 차지했다. 또한 노인 중 1830명(2.7%)이 생활비 마련을 범죄의 이유로 꼽았다. 
[사진= 국내 인구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노인 강력범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범죄 피해자 가운데 고령층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이 축소돼 가족ㆍ친구ㆍ친척 등과 감정교류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냉대를 받고 있다는 소외감과 분노가 노인들을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면서 사소한 일로 주변 사람들과의 폭행사건을 일으키게 된다고 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경우 특유의 ‘나이 대접’ 문화 때문에 대중교통 등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는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사회의 어른으로서 경험 많고 지혜로우며 보수적인 노인의 이미지가 어느새 이해할 수 없고 폭력적이며 사회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며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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