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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무너진 법의 제국들, 그리고 김영란법
기원전 686년 제환공(齊桓公)이 백성들을 잘 다스릴 비결을 묻자 관중(管仲)이 답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이 바라는 바를 해주면 됩니다”

관중은 백성들의 본성 네 가지를 설명한다. 고생을 싫어하고, 풍족함을 원하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하며,후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사순(四順)이다. 관중은 이 넷을 충족시키면 부국강병이 이뤄진다고 봤다. 엄정한 법가 정책으로 원조격인 관중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철학의 소유자였다. 다섯 가구를 하나로 묶는 제도 역시 감시보다는 통치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진다.

기원전 361년 진효공(秦孝公)이 위(衛)나라 망명객 상앙(商)의 개혁정책(變法)을 발표한다. 다섯 집을 하나(伍)로 묶어 서로 감시ㆍ협력하고, 사사로운 싸움을 금지하며, 백성들의 노동력을 극대화시키는 법령들이었다. 특히 귀족들의 세습특권을 박탈하고 오직 능력에 따라서만 포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감룡(甘龍)이 “현행법에 큰 하자가 없는데 굳이 왜 혼란스럽게 합느냐”고 반발한다. 공손앙은 “백성들은 풍속에 안주하고, 학자들은 배운 것에만 빠지기 마련이다. 이래서는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받아 친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변법에 대해 “이래서 사람이 살겠느냐”, “부패를 도려내려면 엄정한 법이 필요한데, 차라리 잘됐다”며 의견이 분분했다. 상앙은 개혁 불만분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엄벌에 처했다. 관중과 달리 상앙은 인간이 현실에 안주하는 게으른 본성을 가졌다고 믿는 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관중과 상앙의 모두 성공을 거둔다. 두 나라의 법은 엄격해서 때로는 왕명도 법을 이기지 못했다. 상앙은 진효공의 아들(훗날 진 혜문왕)까지 법을 어겼다며 처벌했다.

그런데 관중과 상앙이 지은 탁월한 법체계는 비슷한 문제로 붕괴된다. 제나라는 환공이 총애하던 내시 ‘수초’의 계교로 비참하게 굶어 죽으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락한다. 진나라는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지만 환관 ‘조고’에 의해 후계가 조작되면서 멸망한다. 제나라는 민심을 얻은 전(田)씨에게,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이 이끈 농민의 봉기로 무너진 점도 닮았다. 권력자의 도구로만 전락된 법이 혁명의 불쏘시개가 된 셈이다.


부정청탁방지를 위한 법률, 즉 ‘김영란법’이 곧 시행된다. 유달리 법조인들이 득세하는 우리나라다. 김영란법은 법으로 풍속과 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다. 법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우리사회는 엄청난 부패 상태일 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관건은 김영란법 밖이다. 정작 김영란법이 시행됐는데도, 그 밖에서 비리와부패가 여전하다면 성공이 어려울 수 있다. 형평을 잃은 법은 괴물일 수 밖에 없다. 또 김영란법 밖에서 ‘이너서클(inner circle) 만 강화돼 사회적 소통이 막혀도 문제다. 공평하지 못한 법은 분통만 낳는다. 권력비리와 민심이반으로 무너진 법의 제국들을 잊지 말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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