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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한진해운 사태가 더욱 씁쓸한 이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불러온 ‘물류대란’이 적잖은 후폭풍을 낳고 있다. 주요국 항구에서 입ㆍ출항이 금지되거나 하역 관련 업체들이 밀린 대금을 지급하라는 등의 이유로 작업을 거부한 탓에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은 바다 위 유랑민 신세로 전락했다. 떠도는 배에 실린 화물을 둘러싼 소송전이 예고된 가운데 뱃길이 막히자 수출도 차질을 빚고 있다. 상황은 금융논리로 법정관리를 결정한 채권단과 준비를 소홀히 한 정부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킨다는 채권단의 결정은 부당했을까. 역으로 한진해운에 채권단이 자금지원을 하는 경우를 그려봤다. 한진해운에 투입된 자금은 곧바로 밀린 상거래채권 등의 상환에 소요된다. 그리고 해운업황의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한진해운의 곳간은 다시 빈다. 채권단은 재차 자금을 지원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되고, 여론은 악화된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학습효과를 경험한 국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또다시 부실기업에 지원됐다’며 정부와 채권단에 대한 비난 여론을 높인다. 정부와 채권단은 당시의 지원 불가피성을 역설하지만, 이미 나빠진 여론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우선 이런 가정을 따져본 건 결코 법정관리를 보낸 채권단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신규자금 지원과 법정관리행은 분명 상반된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손실을 보는 주체만 바뀌었을 뿐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구조조정은 누가 얼마 만큼의 손실을 부담할 지를 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주주의 지원 여력과 의지가 떨어진 상황에서 선택지는 둘 뿐이다.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돈이 희생되던지, 한진해운의 관련업체들이 손실을 보던지 액수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경우의 수는 둘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있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개시 이후 약 5개월의 시간 동안 정부 주무부처들과채권단, 한진해운이 보여온 협상의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법정관리를 코앞에 둔 시점까지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

원칙과 명분, 여론전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했을 뿐 이해관계의 충돌을 줄이기 위한 타협의 자세는 전무했다. 남탓과 기싸움만 있었을 뿐 갈등 조정의 능력은 아예 실종됐다. 이를 중재하는 구심점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컨테이너에 화물을 실어 보낸 애꿎은 화주들만 곤욕을 치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진해운 사태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갈등 조정 능력의 상실은 비단 한진해운 사태에 국한된 게 아니어서다.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이해관계의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매번 극심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만족할 만한 결론 도출에는 실패하곤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내 이익 만이 중요하다’는 자세가 만연한 사회, 갈등 조정 능력이 상실된 사회에는 결코 미래가 없다. 저성장,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진단보다도 우리 사회의 미래가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이유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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