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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맞는 옷, 벗어던지는 대기업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대기업들의 패션 사업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SK그룹은 SK네트웍스를 통해 해왔던 패션 사업을 접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LS네트웍스 인수 후 10여년 간 브랜드를 확장해왔던 LS그룹도 다시 인수 전으로 돌아갔다. 삼성과 LG도 일찌감치 패션 사업을 축소하거나, 계열 분리시켰다. 한 때 그룹의 모태였던 패션 사업이 이제 대기업들에게 천덕 꾸러기가 된 모습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네트웍스와 LS네트웍스는 최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패션 브랜드의 축소, 또는 철수 가능성을 열어놨다. SK네트웍스는 “확정된 바 없지만 검토 중”이라며 타미힐피거, CK, 오브제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패션 사업 정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 등 유통 업계를 대상으로 SK네트웍스의 패션 사업 매각이 본격적인 협상 단계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연 매출 5000억원 대 사업이자, 과거 선경 시절 교복에서 시작해 40년 가까이 영위했던 그룹의 모태 사업이지만,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매각에 나선 것이다.



2007년 국제상사를 인수하고, 아웃도어 열풍과 함께 공격적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던 LS그룹도 패션 사업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패션 사업 매출의 약 20%를 차지했던 신발 브랜드 스케쳐스 사업을 분사, 매각 및 철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최근 회사 적자의 주범으로 꼽히는 패션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군살 빼기에 나선 것이다. 상반기 아웃도어 브랜드 하나를 철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업계에서는 LS네트웍스의 패션 사업은 LS그룹 인수 전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80년대 국제상사의 모태였던 ‘프로스펙스’ 하나만 남겨둔 채, 회사의 주력 사업 자체가 임대 및 유통, 개발로 변할 것이라는 의미다. LS그룹의 주력 사업군이 전선과 기계 등 패션과는 거리가 먼 설비, 제조업인 것도 이 같은 추측의 한 이유다.

삼성 역시 패션 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룹의 모태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시절, 방직과 함께 키워왔던 패션 사업의 대대적인 정비다. 엠비오 등 캐주얼 브랜드는 상당수 정리하고, 남성복도 브랜드를 과감하게 축소시킨다. 또 업계 2위이자, LG그룹에서 독립 패션 기업으로 분사한 LF도 마찬가지다. LF는 올해 상반기부터 몇몇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지금도 국내 패션 업계 순위에서 1위부터 5위까지를 휩쓸고 있는 대기업들의 패션 사업 구조조정은 내수 불황이라는 외적 환경 요인과 함께, 다른 주력 사업들과는 다른 조직 문화 특성도 함께 하고 있다. 수시로 변하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발빠른 대응이 생존 필살기인 패션 업계 특성이, 서열화된 위계 질서에 기본한 대기업의 조직 특성과 함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웃도어 열풍이 사그라들고, 저가 SPA 패션 등이 뜨고 있는 시장 상황도 대기업들의 사업 정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모 그룹에서 패션 사업으로 옮겨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상하 관계보다는 발빠른 판단과 대응 등이 필수적인 패션 사업의 조직 문화에는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다”며 “그나마 양으로 승부했던 남성복 및 아웃도어 시장도 점점 축소되고 있는 시장 상황도 사업 구조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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