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영란법 첫날 ④] 여전히 혼란…“잘모르겠으면 하지 않는게 정답”
-시행 첫날 ”한쪽에선 주차장 이용 불가“, 다른쪽에선 ”허용“

-애매한 직무관련성 기준, 부정청탁 개념도 여전히 혼란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저희 회사 주차장 장기 등록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해석이 많으나 다른 회사 대응을 고려할 때 우리도 당분간 기자들의 주차장 장기 이용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7일 오후 기자에게 한 대기업 홍보실에서 보내온 문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8일 시행되면서 그동안 출입기자에 허용하던 이 회사 본사 주차장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자에 장기주차를 허용한 것은 김영란법에서 규정한 금품 중 ‘교통 등 편의제공’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조치다.

이날 서울시청도 출입기자들에게 주차장 유료이용 방침을 전달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대부분 정부부처나 대법원 등 사법기관과 지자체 등에선 출입기자의 주차장 이용까진 제한하지 않고 있다. 기자들에게 시간 구애 없이 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한 건 취재대상 기관이 원활한 직무수행을 목적으로 통상적인 범위에서 제공하는 편의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나 민간 기업 입장에선 일부 기자에 대한 특혜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

같은 날 시행되는 법이지만 기업마나 기관마다 적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한쪽에선 가능한 것이 다른 쪽에선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법 전문가들조차 판례가 쌓여야 기준이 세워지지 현재로서는 어떤 게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장 큰 논란은 ‘직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다. 김영란법은 알려진 대로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및 의례 목적으로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한도 내에서 주고받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가, 직접적인 업무관련성이 있는 관계라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커피 한잔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 때문이다. 성적을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직무관련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는 것이다. 
[사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투명한 사회로의 대변화가 예상된다. 사진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정식집이 밀집한 한 골목. 식당들은 ‘점심 장사’를 준비 중이지만, 골목은 한산한 모습이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그런데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법관들을 상대로 한 설명자료에서 직무관련성을 따질 때, “사적인 친분관계 및 평소의 교류 정도, 공직자 등이 해당직위를 보유하지 않았더라면 공직자 등에게 해당 금품 등을 제공하지 않았을지 여부,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지 등이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원 관계자는 “직무관련성은 재판 사항으로 향후 개별적 사안에 대한 판례의 형성, 축적을 통해 구체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해석대로라면 업무관계와 친밀감의 경계가 모호한 무수한 사례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공무원과 민간기업 대관부서 직원과의 관계는 직무관련성이 높지만,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 사이일 수 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가 점수를 평가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제 간의 정’을 나누는 관계일 수 있다. 존경하는 스승에게 커피 한잔을 대접하는 것을 처벌하는 게 타당한가 하는 논란이다.

‘부정청탁’의 개념도 혼란스럽다. 김영란법에서는 부정청탁의 유형을 14가지로 제시했다. 인허가 처리 개입 요청, 인사에 영향, 각종 포상 우수기관 선정 관여, 입찰 등 직무상 비밀 누설 요구, 각종 평가 조작 등이다.

그런데 이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무수한 요청들이 오고갈 수 있다. 예컨대 공연 기획자가 홍보 목적으로 기자들을 초청해 5만원이상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고 기사를 실어달라고 한 경우는 부정청탁일까 마케팅 활동일까? 공연기획자는 자신의 홍보 필요에 의해 공짜 표를 나눠준 것이고, 기자는 그렇지 않으면 보지 않았을 공연을 보고 혹시 관심이 있을 독자를 위해 소개하는 글을 썼을 뿐이다.

법 전문가들은 무수한 이런 사례들에 대해 질문하면 현재까지도 한결같이 “명확하지 않으면 일단 하지 말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판례가 쌓일때까지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조언이다.

우여곡절 끝에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듯하다.

jumpcu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