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 내정자는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고민이 왜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는 권한 이양을 보장받아야 하고, 극력 반대하고 있는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두 개의 산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김 내정자가 결국 포기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친다.
당초 김 내정자는 오전 9시 출근을 할 예정이었지만 1시간 늦게 도착했다. 늦은 이유에 대해 그는 전날 잠을 좀 늦게 들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간간이 웃음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날 출근길에는 줄곧 굳은 얼굴이었다.
전날 모호하게 남겨뒀던 총리직 수락 여부에 대해서 김 내정자는 이날도 “2시에 말하겠다”며 언급을 삼갔다. 김 내정자는 이날 오후 같은 곳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추가 개각 여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수습 방안 등 총리로서 자세한 국정 운영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김 내정자가 총리직을 수락하면 정부는 국회에 청문요청서를 최대한 빨리 보낼 계획이다. 이후 김 내정자 신분은 후보자로 변경된다.
앞서 청와대는 김 내정자 인선을 발표하면서 새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줘 내치를 맡길 것이란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내정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따른 비상시국 상황에서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 등을 행사하는 등 권한을 폭넓게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출근을 앞두고 3일 오전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김 내정자는 총리 내정 사실이 발표된 지난 2일 국민대에서 가진 마지막 강의를 전후해 기자들을 만나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통해 책임총리를 제안 받았다며 책임총리로서 강력한 권한을 보장받았음을 내비쳤다.
김 내정자는 야권에서 자신의 내정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인사라고 비판하며 개각 철회를 주장하는데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야권 인사와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은 청와대의 기습 총리 내정 발표를 놓고 민심을 역행한 인사라며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전날 기자들에게 “지금 이 시국에 어떻게 반대를 안 할 수 있겠느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헌정중단이나 국정붕괴는 안된다”고 강조, 맡은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단 의지를 내비쳤다.
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가 막판 코너까지 몰린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로 꺼낸 김병준 카드가 만약 무산될 경우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김 후보자가 사실상의 거국중립내각 총리가 될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야권이 수용하는 방안이 지금으로서는 청와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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