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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ㆍ재난과 휴먼에러 - 조성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이전에 안전관련 분야 공직에 근무할 때 가장 많이 듣던 말 중의 하나가 “어떻게든”, “철저히” 등등 사고와 재난을 방지하겠다는 관계자들의 의지표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와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적을수록 이 같은 의지표현을 더 강하게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화재로 인해 조기에 단종된 갤럭시노트7 문제를 예로 들면 책임자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굳게 약속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화재원인을 찾아내어 개선해야 비로소 해결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사고예방의지는 관계자에게 필요한 기본자세의 하나일 뿐이다.

최근에도 5호선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 사고,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의 원유배관 폭발사고,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관계당국은 사고재발을 약속하고, 경찰은 관계자의 과실여부를 따져 법적 책임을 묻고는 한다.

이런 사고는 사고방지 시스템이나 각종 시설ㆍ설비ㆍ자재ㆍ장비 등의 부실과 결함이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인적 오류, 즉 휴먼에러(human error)가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구조물의 신뢰성 분야 교과서(Structural Reliability Analysis and Prediction, Wiley, 2nd Edition)는 인간의 무지, 부주의, 착오, 건망증, 실수, 책임전가, 과소평가, 태만 등을 휴먼에러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업무의 단순화, 교육훈련 등을 통해 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법적 처벌을 강화하면 그 만큼 휴먼에러가 줄어드는 게 아니고 처벌이 과도하면 오히려 사람의 능력을 저하시켜 휴먼에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관계자의 과실을 따져 법적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은 사고의 재발을 위해 불가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자를 처벌하거나 그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작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재난이나 사고의 위험요소와 이의 대비상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야별로 로드맵을 세워 미비점이나 문제점을 하나하나 꼼꼼히 구체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발생한 재난이나 사고의 원인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분석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 대책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추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최근 보도된 것처럼 세월호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객선들이 여전히 누가 탑승했는지도 모른 채 깜깜이 운항을 하는 등 안전관리가 다시 소홀해지고 있다는데, 이런 식으로 사고 발생 때만 잠깐 형식적으로 개선하는 모양새만 취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방식이 계속되는 한 사고와 재난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또 하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연재난이나 인적재난을 먼저 겪은 나라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이고 심층적으로 조사하는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 산하에 일부 연구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조사ㆍ연구의 내실을 기하고 또 그 결과를 실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그나마 지방정부에는 이런 기능조차 없어 일회성 외부용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욱 복잡해지는 사고 및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선진외국처럼 지방정부도 이러한 기능을 자체적으로 설치ㆍ운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금년 2월에 내부순환도로 정릉천 구간에서 발생한 PT 텐던 파단 문제는 ’67년 영국에서 Bickton Meadow 보도교가 붕괴된 이래 ‘85년 Ynys-y-Gwas교 붕괴와 ’92년 벨기에의 Melle교 붕괴에 이어 미국에서도 ‘99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주에서 다수의 파단 사고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안이다. 서울시는 2000년도에 발생한 미국의 Mid Bay교 PT 텐던 파단 사고사례를 참고하여 ‘14년도에 한국시설안전공단에 “PSC박스교량 유지관리방안” 용역을 시행하여 15년 말에 완료되었는데, 완료직후인 금년 2월에 파단사고가 났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용역을 통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충분히 예습한 것이 신속하고 차분한 대응을 하는데 다소라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해외사고를 체계적으로 조사ㆍ연구하는 기능이 있었다면 훨씬 더 일찍 대비하여 파단 자체를 예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끝으로, 유사교량이 전국적으로 건설되어 있고 서울시의 최근 발표나 해외의 사례처럼 수분과 염분이 텐던 파단의 주요원인이라면 해안에 건설된 대교(大橋)들이 이에 더욱 취약함에도 이 문제를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에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앞에서 여러 가지 휴먼에러의 원인을 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정부 당국자들의 재난과 사고에 대한 과소평가, 무지, 책임전가, 태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당국자가 관심을 갖고 챙겨야 산하의 조사ㆍ연구기관도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책임자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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