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3일 총리직 수락 입장을 밝힌 기자간담회에서 “총리가 되면 헌법이 규정한 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더구나 청와대는 그런 그를 어떻게 해서든 총리로 모셔오고 싶어한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비슷한 주장을 펼친 당시 이회창 총리가 대통령과의 알력 싸움 끝에 물러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박근혜 정부로선 그야말로 백기투항한 것처럼 보인다. 자존심을 완전히 버린 듯하다. 정책 기조를 이어갈 뜻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새로 지명된 총리 후보자가 지금까지의 국정 기조를 뒤집겠다고 하니 그러라고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살려달라’다. 정권의 생존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카드로 김병준, 한광옥이 지목된 듯하다.
이 카드는 과연 박근혜 정부의 백기투항일까, 아니면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기 위한 일시적 수단일까.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장을 밝히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김병준, 한광옥 카드는 그 자체가 상징적이다.
▶김병준, 한광옥 카드로 백기투항? 그 자체가 아이러니=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등 요직을 역임했다.
김 후보자가 참여정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건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지금까지 그토록 격하하고자 했던 참여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판사판인 셈이다.
지난 2004년 8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는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선보였다. 이 연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성적인 욕설까지 일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연극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준 교수 또한 한나라당에 의해 인생 최대의 치욕을 맛본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참여정부 때인 지난 2006년 7월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되자 당시 한나라당은 그의 논문 표절을 문제삼아 취임 13일만에 낙마시켰다.
이번에 김병준 카드를 청와대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으로서 김 후보자에 대해 “경제를 망치고 부동산정책 실패를 주도했던 청와대 인사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한 것을 보면 이제 교육까지 거덜 낼 작정인 것 같다. 장담컨대 노무현 정권에 큰 고비를 맞게 하는 불행의 씨앗이 될 것으로 본다”며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뒤이어 논문 표절을 문제삼아 김 후보자를 사기 혐의로 고발까지 했다. 결국 당시 김 부총리는 13일만에 물러났다.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카드 또한 그 자체로 너무나 상징적이다.
한 신임 비서실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4선 의원 출신이기도 한 그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입당하긴 했지만, 호남 정치를 대변하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비서실장 임명은 DJ, 노무현으로 계승되는 야권의 정치적 계보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정권 회생을 위한 시간 벌기?=김병준, 한광옥을 전면에 내세워 거국중립내각과 비슷한 착시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차피 ‘눈가리고 아웅’식의 총리 카드가 먹혀들지 않을 것임을 이미 내다보고 ‘버리는’ 카드로 썼을 가능성이다.
장관과 달리 총리는 국회에서 인준을 거부하면 총리가 될 수 없다. 청와대는 일단 김병준 카드를 던져놓고, 되면 그것으로 혼란한 정국이 일단 수습된다는 차원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안 되더라도 야권 분열 및 시간 지연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던질 수 있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김병준 카드를 ‘버리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징후는 벌써부터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김 총리 후보자가 3일 오후 2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책임총리로서의 권한을 사실상 보장받았음을 강조하면서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는 등 소신을 펼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 측이 김 카드를 버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은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내치, 외치 부분은 청와대에서 나간 적이 없다”며 김병준 후보자의 책임 총리 역할 가능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2일 청와대 관계자의 “김 후보자가 책임 총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언급을 뒤집은 것이다.
그는 “보도에 나오는 대로 내치는 총리, 외치는 대통령이 하는 식의 구분이 현행 헌법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책임 총리 권한을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 수석은 “대통령님하고 새로 오는 총리님의 대화나 역할 분담을 통해 구분되리라 생각하고 있다”면서 “상황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새로 오는 총리께 상당한 부분 내각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정도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추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서 이 발언은 ‘대통령이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향후 김 후보자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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