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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닭갈비
묘미는 고소한 참기름 위에 앉은 김가루를 밥알과 함께 씹을 때 나온다. 혀에 착착 감기는 빨간 양념의 진가는 이 볶음밥이 팬에 눌어 붙었어도 숟가락의 날을 세워 박박 긁어 먹을 때 비로소 느껴진다. 풍미에 사로 잡혀도 ‘본전 생각’은 나는 법. 이게 어떤 음식인지, 뭘 먹고 있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막판엔 볶아먹든 비벼먹든 고추장에 참기름으로 끝나기 일쑤인 한국 음식의 태생적 한계다.

20년 전 만해도 전국의 먹자골목에서 힘깨나 쓰던 닭갈비도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둥근 철판 위에 가늘게 썬 양배추와 깻잎이 수북하게 쌓였고, 붉은 양념에 재운 닭이 올려졌다. 닭고기가 핵심일 텐데, 양은 많지 않다. 닭을 빼놓고 생각하면 순대볶음, 즉석떡볶이와 다를 게 없다.


사진출처=123rf[사진출처=123RF]

아무튼 닭갈비는 1990년대 초ㆍ중반부터 몇 년간 요식 업계를 주름잡았다. 1960년대말 강원도 춘천의 한 선술집에서 숯불에 닭의 갈비를 구워먹은 게 닭갈비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왜 하필 춘천이냐는 데엔 그 곳에 양계 농가가 많은 영향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도 춘천엔 닭갈비집이 성업 중이다.

열풍이 잦아든지 한참 됐지만 닭갈비는 저렴해서 인기였다. 냉정하게 봤을 때 재료의 핵심인 닭의 양을 비교하면 돼지갈비 따위보다 월등히 싼 게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무엇보다 닭갈비엔 닭의 갈비가 없다. 이 계륵(鷄肋) 자체엔 사람이 씹어먹을 만한 육질이 없어서다. 지갑 얇은 소비자 입장에선 닭갈비로 비싼 갈비 먹는 ‘기분’을 낼 수 있고, 판매자도 이윤이 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라가 휘청이는 와중이라 큰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계륵 같은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닭갈비는 맛이라도 있지만, 그런 인간들을 보는 건 국민된 입장에서 고역이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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