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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 위 시민들]“독재 타도” vs “하야”…닮은듯 다른 ‘6월항쟁’ vs ‘朴퇴진 촛불’
-1987년ㆍ2016년 모두 정부 ‘불통’이 시민 분노 격화

-1987년 ‘폭력’ vs 2016년 ‘비폭력’…참가 연령ㆍ계층 확대가 주요 요인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지난 12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대 규모라는 10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비판하고,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두고 수십년간 이어진 군부독재 시대를 끝냈던 ‘6월 민주항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수십년간 이어진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국민이 스스로 원하는 지도자를 선출한 민주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사진=헤럴드경제DB]

17일 역사학계 및 사회학계에 따르면 ‘2016년 민중총궐기’와 ‘6월항쟁’ 사이엔 형태적 유사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두 사건 모두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 광장으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검증되지 않고 책임도 없는 개인에게 의존에 국정을 펼쳤다는 사실에 분노한 2016년의 시민들과, 수십년간 이어온 군부독재에 지친 시민들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외쳤던 1987년의 시민들 모두 이 공간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 인원수 역시 유사하다. 지난 12일 주최측 추산 100만명의 인파가 거리로 나온 것처럼 1987년에도 전국에서 약 10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시민들의 분노에 대해 정부가 ‘불통’으로 일관했다는 점도 두 사건이 갖는 공통점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수십년간 이어진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국민이 스스로 원하는 지도자를 선출한 민주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사진=헤럴드경제DB]

1987년 전두환 정부는 시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에 대해 간접선거로 7년 단임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5공화국 헌법을 유지하겠다며 ‘4ㆍ13 호헌’ 조치를 취했다. 2016년의 박근혜 정부 역시 즉각 하야하거나 여야 합의에 의해 추천된 책임총리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해당 내각에 대통령의 권한을 전적으로 이양하라 시민들이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핵심이 빠진 1,2차 대국민담화와 일방적인 청와대 조직 개편 및 총리 선임 등으로 시민 분노를 격화시켰다.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1987년엔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과 이한열 군의 죽음이 있었고, 2016년에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부검 논란 등이 있었다”며 “죽음이 시민들의 분노를 상승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두 사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사진=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의 모습.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라는 100만명의 인파가 모여 시위를 벌인 가운데서도 질서정연한 평화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박현구 기자/pkho@heraldcorp.com]

6월 항쟁이 백골단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경찰의 폭력 진압과 시위대의 폭력 저항으로 기억되는 반면, 2016년 민중총궐기는 가두행진과 구호 제창을 비롯해 거리 공연 등 문화제적인 성격이 복합된 평화시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경찰 역시 질서유지 수준의 평화시위 허용으로 충돌을 최소화했다.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시위 참가 계층도 넓어졌다. 6월 민주항쟁에선 운동권이 중심이된 대학생들이 시위의 전면에 나섰고, 이후 ’넥타이 부대‘로 일컬어지는 샐러리맨들이 가세한 것에 비해 2016 민중총궐기에서는 가족단위 참가자 등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형태로 변화했다. 특히, 진보와 보수, 연령, 출신 지역, 직업군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시민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심 소장은 “두 차례의 항쟁 모두 학생들이 주요 역할을 담당하며 사회 변화의 선두에 섰다”며 “다만, 6월 민주항쟁의 경우 운동권 대학생들이 주도한 데모의 형식으로 표출됐다면 2016년 민중총궐기에서는 전체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중ㆍ고등학생들의 교복 시위가 큰 역할을 도맡았다”고 설명했다.

투쟁의 대상 역시 바뀌었다. 6월 민주항쟁에서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상징하듯 수십년간 이어온 군부 독재세력이 주요 항쟁 목표였다면, 2016년 민중총궐기에서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진=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의 모습.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라는 100만명의 인파가 모여 시위를 벌인 가운데서도 질서정연한 평화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박현구 기자/pkho@heraldcorp.com]

하지만, 전문가들은 6월 민주항쟁에 비해 2016년 민중총궐기가 갖는 한계점이 있다고도 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1987년엔 시민운동을 통해 분출된 변화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현실화 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들이 규합된 상황이었던 것에 비해 2016년 민중총궐기의 경우 정치권이 시민들의 바람을 담아내지 못하는 등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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