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가까이 더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40년 회고전을 연 김용익 작가(69)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전 전시가 작가의 과거를 돌아보는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그의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라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모더니즘의 묵시록#13,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 x 162cm 사진: 박준형 [제공= 국제갤러리] |
어찌보면 ‘오래된 미래’다. 신작은 1990년대 물방울 무늬 그림인 ‘땡땡이’ 시리즈를 계승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묵시록’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얇게 더 얇게’, ‘20년이 지난 후’ ‘유토피아’ 등 다섯가지 연작으로 구성됐다. 과거 스케치 혹은 판화작업들을 캔버스로 옮긴 후 이를 재편집 및 구성한 작품이다.
‘땡땡이’는 과거 단색화를 탈피해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공공미술로 화단이 나뉘던 시절, 그 어느쪽에도 끼지 못했던 작가가 선택한 작업이다. 당시의 땡땡이는 모더니즘의 획일화된 경향에 반발하며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을 은유하는 매개로 땡땡이를 활용했다.
당시의 땡땡이와 지금의 땡땡이가 무엇이 다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작가는 ‘재전유(re-appropriation)’를 제시했다. 이미 존재하는 관념의 주변 문맥 또는 맥락을 변화시켜 또 다른 의미의 관점을 도출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옛날에는 땡땡이가 ‘지우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저항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신작의 땡땡이는 얇은 질감과 가벼운 색채를 입었다. 그렇다고 작품의식이 가벼워 진 것도 아니다.
‘모더니즘의 묵시록’은 제목부터 모더니즘 미술을 전복시켜 모더니즘 문명의 종말을 보여주겠다는 다소 거창한 의미를 담았다. ‘그리드(grid)’라 불리는 화면분할을 통해 계산된 자리에 위치한 땡때이는 모더니즘의 상징적 도상과 흡사하지만, 작가는 캔버스 위에 구멍을 뚫거나 식물의 액즙을 발라 순수한 모던적 이미지의 발현을 방해한다.
작품의 설치에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된다. 작품이 돋보이도록 조명을 설치 해야하나, 조명은 엉뚱하게 벽면이나 구석을 밝히고 있다. 땡땡이도 완벽한 원모양이 아니라 이지러진 모양도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캔버스 위에는 작가가 써내려간 생각의 파편, 끄적임, 먼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정제된 미학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미술 위에 흠집을 내는 제스처”라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는 내달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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