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주목 3040 한국화가 14인 출품
이상향(理想鄕)은 한국 전통 회화의 단골 주제 중 하나다. 선조들이 그렸던 그곳은 환경적 낙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성적으로 완벽한 곳이기도 했다. 현대의 젊은 한국화 작가들이 그린 ‘이상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베일을 벗은 그곳은 한편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한편 웃음을 짓게 되는 등 모든 것이 혼재된 공간이다.
금호미술관은 내년 2월 12일까지 기획전 ‘무진기행’을 개최한다. 강성은, 권순영, 기민정, 김민주, 김정욱, 김정향, 서민정, 신하순, 양유연, 이은실, 이진주, 임태규, 조송, 최은혜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30~40대 한국화가 14인이 이상향이라는 주제를 놓고 저마다의 해석을 작품으로 펼쳐놓는 전시다.
전시에서 만난 한국화는 한마디로 ‘젊다’. 주제의 해석은 물론이고 선지와 장지, 먹과 전통 안료, 아크릴 채색 등 다양한 재료를 아우르는 작품은 한국화의 확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상향’이라는 주제의 이면에 존재하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내러티브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장르적 경계는 허물어진, 동시대성을 획득한 한국화의 ‘현재’를 만날 수 있다.
이은실의 ‘중립적 공간’은 이상향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은밀하고 불편한 것, 금기시 되는 것은 문 밖에 두고 인간적인 것, 고상한 것, 점잖은 것은 문 안에 배치했다. 인간적 본능과 욕망을 터부시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작가는 장지를 여러장 겹친 뒤 그 위에 채색을 하고, 세필로 형상을 그려 마치 그림 위에 막을 씌운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이상향’이라는 전시 주제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서민정은 주인을 찾아 나서는 개의 여행을 통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삶을 묘사했고, 양유연은 피난처이자 위안의 대명사인 ‘달’이 사실은 억압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기민정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일련의 연애사를 현대 도시 경관과 동양산수 경물의 환상적 이미지와 함께 담았고, 최은혜는 우거진 열대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닿을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교차지점을 그렸다.
전시제목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차용했다. 소설의 배경인 안개에 뒤덮인 가상공간 무진이 주인공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었던 것처럼 참여 작가들의 이상과 욕망을 전시장 안에 펼쳐 보이고 공유하겠다는 의미라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사진제공=금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