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미국 곳곳에서 그의 당선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비상식량을 사용해야 할만한 비상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비상식량을 산 사람들은 그저 쓸데없이 과민했던 탓에 헛 돈만 쓴 것일까?
사람들의 공포에 기반한 마케팅, 경제가 추락할 때 오히려 활황이 되는 산업. 이러한 비상식량 업계가 변화를 시도해 신규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최근 WSJ가 보도했다. 과거보다 개선된 저장기술로 인해 유통기한이 길어졌고, 굳이 비상사태까지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을 가정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또 글루텐프리, 유기농식, 건조 그릭요거트, 과일 스낵 등 새로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고객 저변을 넓히고 있다.
레거시푸드스토리지에는 유통기한이 무려 25년에 달하는 비상식량 제품이 있다. 우리 돈으로 33만원 정도하는 34파운드(15.4㎏) 패키지가 가장 많이 팔리는 데, 파스타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치킨알라킹(닭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수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사는 또 좁은 주거공간에 사는 도시민들을 위해 작은 크기의 패키지도 내놓았다.
오거슨팜스(Augason Farms)라는 비상식량 브랜드를 갖고 있는 업체 ‘블루칩’ 역시 과거에는 기껏해야 캠핑족을 노린 제품을 내놓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알리슨 씨는 “장기 상온 보관 가능한 식품은 매일매일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 납품용 비상식량 업체 마운틴하우스(Mountain House)의 마케팅 코디네이터 케니 라슨은 “좀비가 나타나는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폭설에 갇혀 식료품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는 있다”라고 했다. 굳이 전쟁 같은 재난 상황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기 귀찮다거나,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왔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비상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비상식량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데빈 스프라트(30) 씨는 과거에는 배낭여행 때나 비상식량을 이용하곤 했지만 지금은 자주 이용할 수 있는 간편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대단한 고급 음식이나 집밥은 될 수 없지만, 치리어스(Cheeriosㆍ시리얼 브랜드) 수준도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비상식량을 일상식으로 이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생존을 위한 상황을 가정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칼로리와 염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 한해 시장 규모 5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식품 시장에서 잘해야 고작 3억 달러 규모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소수의 흐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