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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개월’ 점거농성ㆍ대안언론의 폭로가 이끌어낸 美 “송유관 건설 취소’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노스다코다 주 송유관 건설에 반대해온 미국의 스탠딩 록의 슈(Sioux)족이 4일(현지시간) 9개월의 점거농성을 벌인 끝에 에너지기업의 송유관 매립 계획을 좌절시켰다. 스탠딩 록은 노스다코다 주와 사우스다코다 주 경계에 있는 바위로, 원주민 슈족의 성지이자 미 원주민 대표 보호구역이다. 원주민들은 9개월 간 점거농성을 지속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폭로한 대안 언론인의 보도에 힘입어 미 정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삶의 터전이자 ‘성지’(聖地)”…개발과 보호의 기로에서=

분쟁은 지난 2014년 12월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ETP) 회사가 노스다코다와 사우스다코다,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4개 주를 잇는 총연장 1931km의 대형 송유관을 건설하는 ‘다코다 액세스 송유관 사업’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ETP 측은 송유관을 설치하면 일일 47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으며, 1560억 달러의 세수효과와 8000~1만 2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각 주의 수자원 공사는 올해 3월 ETP의 사업 계획을 허가하했고, 주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자 연방기관인 환경보호청(EPA)가 건설 현장을 감사하는 미 육군공병에 현장답사를 요청했다.

문제는 지정된 송유관 매립지가 각 주의 원주민 보호구역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발생했다. 약 200여 명의 스탠딩 록 수족은 4월 송유관 개발 소식을 듣고 보호구역 내 식수원이 오염될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의 성지들이 파괴될 것이라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851년 원주민의 거주지 보호를 위해 체결된 라라미 요새조약을 근거로 회사 측에 송유관을 건설할 수 없으며, 육군 공병대가 이를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육군 공병대가 부족의 주요 식수원인 호하헤호 부근에서의 송유관 건설을 허가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9개월 점거농성에 들어간 원주민들과 경호관 폭력 폭로한 기자=



슈족은 법원에 육군 공병대의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청구했다. 그리고 회사 측이 공사 작업에 들어가자 송유관 매립지인 캐논볼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경비견이 원주민들을 공격하는 등 사고가 발생했고, 격분한 미 전역의 원주민들이 캐논볼에 모여 천막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들도 원주민들의 생활권을 보장하라며 시위에 동참했고 전미 원주민 의회의 브라이언 클라두스비 대표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에 도움을 호소했다. 슈족의 부족장인 데이브 아챔볼트는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송유권 건설 중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법원이 슈족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결국 ETP 사에 원주민들의 보호구역인 오하헤호 주변에서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또, 원주민 시위대의 천막촌을 철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12월 5일까지 연방 소유의 땅인 캐논볼 농성장을 자발적으로 떠나라고 지시했다.

슈족은 “송유관 건립 계획을 철회하기 전에는 농성현장을 떠날 수 없다”라고 저항했다. 이에 노스다코다 주의 경찰 200여 명은 공사현장을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를 쫓아내기 위해 진압작전을 펼쳤다. 지난 10월 27일 경찰들은 캡사이신의 든 물대포와 훈련견을 동원해 원주민들을 압박했다. 개에 물려 피를 흘리는 원주민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그리고 이날 농성현장은 SNS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미국의 대안 언론이자 유명 진보언론인 ‘데모크라시 나우’의 에이미 굿맨 창설자 겸 기자가 현장을촬영했던 것이다. 굿맨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위 영상을 공개했고, 조회수는 1400만 회를 기록했다.

▶ 영상에 분노한 美 시민들, 시위물결에 동참하다



굿맨의 영상이 SNS에 공개되면서 분노는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페이스북에서는 ‘스탠딩 록’을 태그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스탠딩 록에 ‘체크인’(위치를 태그)한 사람은 60만 명을 넘어섰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 나라를 기만하고 물질적인 이익 때문에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기업을 규탄한다”는 메시지를 공유했다. 퇴역장군 2000여 명도 모였다. 퇴역군인 모임 대표 애슐리 파커는 “시위대를 보호하고, 평화적 시위에 폭력으로 대응한 사법 당국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라며 “무장 경찰이 시위대에 충격 수류탄을 던지고, 추운 날씨에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에 최루탄과 캡사이신 물대포를 쏘는 등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라고 규탄했다.

‘원주민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미국 정부는 결국 노스다코다 대형 송유관 건설 계획을 취소했다. 조 엘렌 다시 미 육군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문제를 가장 책임감 있고 빠르게 마무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송유관이 들어설 새로운 루트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챔볼트 슈족 부족장은 이에 “정부의 결정을 진심으로 지지하며 역사가 옳은 길로 가도록 조치를 취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 육군, 법무부와 내무부에게도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에너지 자립 문제나 경제 발전,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원주민도 배려해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이번 슈족의 시위가 “역사를 만들었다”라며 소외층이라 외면받았던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미 전역에 들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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