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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한 선비의 기상이 고스란히…서정주의 추상을 회고하다
현대화랑, 한국 서정주의 추상 거장 류경채 개인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생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은 그를 ‘선비’라고 했다. 대쪽처럼 곧은 성품과 세속적 이재(理財)를 멀리했던 그의 성격이 딱 ‘선비’였다. “내 그림은 살 사람도 없지만, 팔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림일로 안색을 바꾸는 일도 싫고, 돈 받으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다. 차라리 한끼를 굶는 것이 뱃속이 편하다”는 말은 그의 성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서정주의 추상’의 거장 류경채(1920~1995)화백의 이야기다.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한국적인 ‘서정주의 추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류경채 화백의 개인전 ‘류경채의 추상회화 1960-1955’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현대화랑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것은 지난 1990년 이후 26년만이다.

류경채 화백은 일반인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서울 왕십리 근처의 야산을 그린 ‘폐림지 근방’으로 대통령상을 받아 ‘스타’로 부상하지만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보단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평생 업으로 삼았다. 본인은 화단에서 인정받는 중견작가였지만 “학기중에 작업하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본분에 어긋나”기에 방학에만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는게 둘째며느리 정수현씨의 말이다.

정씨는 “여름방학이 시작하면 아버님 작업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매는 일이었어요. 하루는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사면 안되냐’했더니, 저를 빤히 보시면서 ‘여기서부터가 작업의 시작이다’ 하셔서 군말없이 도와드렸지요”라고 회상했다. 준비단계부터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였던 셈이다. 
류경채, 염원 95-2, 1995, 캔버스에 유채, 161×129.3cm [사진제공=현대화랑]
류경채, 날 85-3, 1985, 캔버스에 유채, 130×162cm[사진제공=현대화랑]

작업실엔 티끌 한 점 없어야 했고, 작업시엔 사위가 고요해야 했다. 정씨는 “아버님이 작업을 시작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뒤꿈치를 들고 걸어야했다”며 “그 더운 여름에 식사도 않고 작업에만 매진하셔서, 음료수 한 잔 건네드리려고 작업실에서 한 시간씩 잔을 들고 서 있었다”고 말했다. 엄했던 시아버지가 어려웠던 어린 며느리는 혹시나 작업을 방해할까 차마 “이것 좀 드시고 하시라”는 말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작업과정도 볼 수 있었고, 유화 붓을 빠는 ‘영광’(?)도 누렸다. 종일 작업한 붓을 휘발유에 씼어내고, 빨래비누로 새하얗게 빨아내면 그날 하루 작업일과가 끝났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작업해도 1년 완성한 작품은 예닐곱점을 넘지 못했다. 류 화백은 평생 모두 50호 이상의 대작들로 유화만 200여점을 남겼다. 수채화나 드로잉도 거의 없다는게 유족의 전언이다. 밀도와 완성도를 중시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 결과로 보인다.

류 화백은 평생 단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것도 63세였던 1983년 춘추화랑에서의 개인전이 처음이었고, 1990년 현대화랑에서 연 개인전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제자인 유희영 작가(전 서울시립미술관장)는 “아마도 극도의 결벽주의와 완벽주의 성격에 개인전을 고사했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사실상 세번째 개인전인 이번전시엔 1960년대 서정적 추상작업부터 작고하기 전 기하학적 추상까지 30여점이 선보인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비구상 시기, 순수추상, 색면분할, 기하학적 추상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전반적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류경채, 여일, 1963, 캔버스에 유채, 162×103cm[사진제공=현대화랑]
한국 서정주의 추상의 선구자 류경채 화백(1920~1995) [사진제공=현대화랑]

특히 1960-1970년대 추상작품인 ‘단오’, ‘칠석’,‘중복’ 등 특정 절기를 제목으로 한 작품들이 나왔다. 특정 대상의 형태를 해체하는 것에서 벗어나 특정일에 느껴진 작가의 심상을 풀어낸 작품으로 색감이 한국적이면서도 따뜻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날’시리즈가 시작된다. ‘날 79-5’는 1979년 5월 어느날을, ‘날 83-7’은 1983년 7월을 담은 것이다. “작가는 삶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 해 ‘볼 수 있는 시’로 기록하고 싶었다”(김희영 국민대 교수)는 평가다.

전시를 준비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류경채 화백은 추상작가로 단순한 표현 이상의 색감을 보였다”면서 “학자들 사이엔 잘 알려져 있지만, 시장에서는 아직 저평가돼 이같은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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