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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도끼
‘백발(白髮)은 길이가 삼 천 길/근심 때문에 이렇게 자랐다/모르겠구나, 맑은 거울 속/어느 곳에서 서리를 얻어왔나’

시로 신선의 경지에 올랐던 중국 당나라 때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의 한 수는 새해 벽두에 읽기엔 판을 깨는 느낌도 있다. 미완으로 인한 회한은 포부로 가득차야 할 출발선엔 어울리지 않아서다. 이백은 정치적으로 입신의 목표엔 도달하지 못했어도 자존심은 잃지 않았다. 



속세의 권력을 좇는 것보다 심금을 울리는 구절 여럿 남긴 ‘스웨그(swag)’가 더 빛난다. 때문에 새해 설계의 선택지로 삼지 말란 법 없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주인공인 소년 시절의 이백은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산중 수련에 지친 그가 하산하며 만난 노파와 나눈 문답에서 읽힌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는 노파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귀를 열었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갈면 바늘이 된다”는 말엔 이백은 발길을 돌려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소년의 하얀 도화지 같은 마음이 훈훈하다.

정부의 경제 사령탑, 최근 힘빠진 한 대선주자 등 정치ㆍ경제 부문에서 ‘한 자리’한다는 인물들의 새해 각오가 비장하다. 약속이나 한 듯 마부작침을 들고 나왔다. 모두의 눈에 상황이 녹록지 않은 거다.

도끼를 바늘로 만들 끈기와 참을성. 이건 우리 민족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셀 수 없이 숱한 날을 참고 또 참아 이만큼 살게 됐다. 세계가 올해 겪게 될 미증유의 리더십 변혁, 경제의 불확실성 앞에 또 한 번의 인내는 ‘기본 옵션’이다.

기본 말고 ‘하나 더’가 필요하진 않을까. 바늘을 만들어 무엇에 쓸 건지를 알리거나 이해시키는 노력 같은 걸 얘기하는 거다. 5000만명이 진득하게 도끼를 갈더라도 나아갈 방향을 알아야 흥도 나고 중도포기하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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