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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이 위험한 이유…‘몰랐다’‘모른다’
온 국민들의 관심사 속에 열린 최순실 청문회의 증언들을 한마디로 줄이면 ‘모른다’거나 ‘몰랐다’이다. 정황상 모를 리가 없는데도 ‘모른다’고 잡아떼고. 직무상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발뺌했다. 막무가내로 버티는 증인들 앞에서 청문회 위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발뺌하는 이유는 뻔하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몰랐다고 하면 비난을 받겠지만, 법적 처벌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몰랐다’는 전략은 청문회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가까운 예가 대형참사나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다. 사고조사만 했다하면 한결같이 ‘몰랐다’거나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행태는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청문회 증언들은 거짓말 같지만, 사고조사 때 관련자들의 몰랐다는 말은 진실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의 고위 경영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고위험이나 안전에 대해 잘 몰랐을 수 있다. 대부분은 정말로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사고책임에 대한 처벌을 하고 싶어도 처벌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사고책임은 현장 실무자의 몫이 된다. 그들은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무자를 강하게 처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권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참사나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단지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고위직일수록 안전문제는 알아서도 안 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섣불리 관심을 가지고 아는 체했다가는 나중에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고위험이나 안전문제를 논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회의록을 남기거나 문서로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다. 그랬다간 나중에 몰랐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관리 책임은 고위직에서 하위직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대기업에서 영세·소규모기업으로, 원청에서 하청으로 끝없이 하위단계로 전가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안전을 강조하고, 처벌규정을 높여도 결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80년대 후반 유럽에서는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위험성평가’라는 새로운 규제방식을 도입했다. 사업주에게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파악, 평가, 개선하고 이러한 사실을 근로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 알려주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위험성평가의 핵심은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근로자가 사업장의 위험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하더라도 나는 모르겠다는 것과 같다. 이 제도의 도입과 실행을 통해, 사업주의 ‘몰랐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2017년 새해부터는 더 이상 ‘몰랐다’고, ‘모른다’고 발뺌할 수 없는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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