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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택시승차대“사람도, 차도 없어요”
버스전용차로 중복·엉뚱한 위치
승객·기사 모두 외면 ‘있으나마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버스 정류장 인근 택시 승차대. 설 명절을 맞아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도 택시 승차대 앞에서 택시를 타는 승객은 1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몇몇은 도로 곳곳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대학생 이근형(22) 씨는 “이쪽 버스 정류장을 10년째 이용하면서 200m도 안 되는 거리에 택시 승차대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모바일로 클릭 몇 번이면 잡을 수 있는 택시인데 굳이 승차장을 쓰는 승객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시 택시승차대가 ‘찬밥’ 신세다. 이용자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으로 설치한 탓에 승객과 택시기사로부터 모두 외면받고 있다.

택시 승차대가 시민과 택시기사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서울시는 이 달까지 187개소를 이전ㆍ철거하기로 했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택시 승차대는 422개소다. 시는 이 가운데 이용률이 저조한 187개소를 추려, 이달 중 이전ㆍ철거하기로 했다.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4%를 손보는 셈이다.

택시 승차대는 버스 정류장과 같은 역할로, 시민 편의 제공을 목적에 두는 시설이다.

서울시의 경우 택시승차대 설치는 민간투자사업으로 1개소 당 1400여만원이들었다. 위탁관리업체가 설치비용을 전부 부담하며 대신 승차대에 설치하는 광고 등으로 수입을 거둔다. 위탁관리기간은 2021년 8월 31일까지다.

택시승차대가 사라질 위기인 건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안에 전수조사와 함께 이전ㆍ철거 등의 과정을 끝낼 것”이라며 “남아있는 승차대의 이용률을 높일 방안으로 와이파이 등 서비스를 연계한 ‘스마트 택시 승차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승차대에서 와이파이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승객의 발길을 붙들겠다는 전략이다.

설치 장소가 버스전용차로와 중복돼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는 점도 문제다. 서울 전체 택시 승차대 중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와 중복되는 택시 승차대는 74개소(18%)로, 전체 5곳 중 1곳 수준이다.

도로교통법상 택시는 승객 승하차의 목적이 아니라면 버스전용차로 이용이 제한되며, 장시간 머물러 있으면 불법 주ㆍ정차로 간주되어 과태료가 부과된다. 택시기사 주모(67) 씨는 “버스전용차로와 중복되는 택시 승차대에는 딱지를 뗄까봐 얼씬도 안 한다”며 “버스와 뒤엉키면 교통 흐름만 깨지기 일쑤”라고 했다.

애초부터 엉뚱한 지역에 설치되는 일도 흔하다.

현행 여객자동운수사업법에 따르면 관할관청(지자체)은 택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택시 승차대를 세울 수 있다. 다만 설치하거나 설치 기준 등을 정할 때는 관할 지방경찰청장과 협의해야 한다. 지자체와 지방경찰청이 협의하는 과정에서 양 기관이 모두 만족할만한 설치 지점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사실상 서울시와 구청, 경찰 3곳이 말을 맞춰야 한다”며 “서로 다른 기준으로 논의하니 결국 엉뚱한 곳에 택시 승차대가 생긴다”고 털어놨다. 이는 결국 승차대의 이용률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설치 규정의 일원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명수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택시 승차대도 버스 정류장처럼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국토교통부 등이 나서 (기준을) 잡아주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설치 당시 수요자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점이 문제”라며 “이미 외진 곳에 있는 택시 승강장은 콜택시와 연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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