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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첩의 세계·혼돈의 드로잉…당신은 무엇이 보이는가
-‘박현기-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展
백남준과 계보잇는 비디오 아트 선구자
포르노·만다라 도상 중첩된 영상
한지에 담긴 오일스틱 드로잉등 전시
삼청동 갤러리현대서 내달 12일까지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는 2일부터 박현기의 개인전 ‘박현기-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개최한다.

박현기(1942~2000)는 모니터를 나무, 돌, 대리석과 함께 설치하고 특정 주제를 가진 영상들을 중첩, 조합해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작가다. 



TV모니터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지라, 곧 잘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인 백남준의 후대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백남준이라는 큰 산을 넘고자 노력했고, 그와는 전혀 다른 예술언어를 구사한다”는 게 후배인 신용덕 미술평론가의 말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상작품을 비롯, 설치작품, 오일스틱 드로잉 등 25점이 선보인다.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작가가 살아 생전 관심을 보였던 ‘이미지의 중첩’과 ‘바라보는 것의 문제’로 요약된다.

화면 전체에 배경으로 깔린 수많은 포르노 영상과 불교 만다라 도상의 중첩은 현대사회의 ‘진리’를 그려냈고, 철도에 쓰인 침목과 천을 두들기는데 사용했던 나무 다듬이대는 그 위로 수없이 지나갔던 기차의 시간과 옛 여인의 방망이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했던 타격들의 중첩이다. 또한 바닥에 놓인 다듬이대와 침목의 조합은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도 혹은 정사각형으로도 보이며 이것이 벽에 설치된 철제 프레임과 쌍둥이처럼 겹쳐진다.

이같은 중첩은 회화작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박현기는 설치작업으로 더 유명하지만 1993~4년엔 회화작업에 몰입하기도 했다. 한지에 오일스틱을 활용한 드로잉으로, 여러번 겹쳐그린 선이 인상적이다. 생활을 위해 건축가로도 활동했던 흔적이 회화에도 드러난다.

짧고 곧으면서도 부드러운 선은 도식화된 건축 드로잉의 특징이기도 하다. 중첩된 선은 여느 추상화 작품처럼 보이나 사실 그 아래 작가가 늘 작품에 차용했던 돌과 모니터, 만다라 등 다양한 이미지가 섞여있다. 화면 하단에 작가 자신의 주민번호가 또렷히 기록된 것 또한 독특하다.

신용덕 미술평론가는 “들쑥날쑥 하는 생각의 과정을 뭉툭하게 그려지는 오일스틱으로 한지에 그려낸 것은 명확하고 깔끔함을 추구하는 서양미술에선 일종의 ‘에러(틀린 것)’로 볼 수 있으나, 그렇게 선명하지 않고 빗 맞추는 것의 미학이 있다”며 “국제무대에서 최근 한국미술, 특히 단색화가 재평가 받는 것도 이러한 한국적 미학을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도, 메모도, 음표도, 단어도 아닌 낙서같은 회화작업 앞에 서면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았다. 강태희 미술평론가는 전시 서문에서 “특정 대상의 이미지를 그리기보다 즉흥적인 손의 움직임이 그대로 기록되는 인덱스적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회고전에 이어 2년만에 열린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지난 회고전에 다루지 못했던 박현기 작가의 다른 모습에 집중했다”며 “단순히 한국 비디오아티의 선구자로 설명되는 박현기를 넘어서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흐르는 철학적 메시지를 깊이있게 다루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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