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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이 책!] 폐허속 생존위한 처절한 분투…종말 한가운데 부르는 희망歌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상상. 어떤 이유에서인가 세상은 멸망했다. 핵폭발이 일어나 세상이 화염에 휩싸였거나, 전염병이 온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거나, 황색 먼지로 뒤덮여 지상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거나,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세계가 온통 잿빛이 되었거나. 그런 세상에서, 내가 만약 생존자라면?

이 끔찍한 상상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소설로 탄생했다. 하나인 듯 살을 맞대고 붙어 있는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립,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향한 치열한 분투,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실존적 고뇌……. 아마도 이런 것들이 그토록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켰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소개할 이 소설의 한 구절처럼 “진정한 달콤함은 지옥의 변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피터 헬러의 『도그 스타』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 어딘지 다른 묵시록 소설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서정적’ ‘목가적’ ‘관조적’이라는, ‘묵시록 소설’과는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관형사들이 이 소설 앞에서라면 왠지 허락될 것 같으니 말이다.

구 년 전, 전염병이 휩쓸고 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힉은 겨우 살아남았다. 임신한 아내도 그때 잃었다. 힉은 송어 낚시를 사랑하고, 경비행기 모는 것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지금 그는 콜로라도의 한 공항 격납고에서 살고 있다. 그의 곁에는 반려견 재스퍼와, 공항 주변에 접근하는 자는 망설임 없이 처단하는 냉혹한 동거인 뱅리가 있다.

사위가 온통 죽음이다. 상대를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곳에서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죽음을 피하는 것, 혹은 죽음을 유예하는 것. 그는 자신의 “세상이,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그나마 의미를 지닌 모든 것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단지 생존(生存, 살아서 존재한다는 이 말의 무거움이란!)만을 위해 버티는 삶에 이력이 난다. 가끔은 따스한 아침 햇살 속에 이대로 영영 잠들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어느 봄 힉은 결심한다. 삼 년 전 그랜드정크션 위를 비행하다 우연히 들었던 무전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뱅리를 공항에 남겨둔 채, 돌아오기에 충분치 않은 연료를 싣고 귀환불능지점 너머 그랜드정크션으로 날아오른다. 어쩌면 그곳에 있을 선량한 생존자를 찾아, 종말의 한가운데 마주할지 모르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도그 스타』는 (이미) 사라져버린, (이 순간) 사라져가는, (이제) 사라져갈,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보내는 절절한 연서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시(時)적인 생존 가이드”(<퍼블리셔스 위클리>)이자, 소멸에 맞서 싸우는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기다.

혹자는 이 서정적인 종말소설을 두고 너무 낙천적이라며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어둠을 통과해갈 때, 희망조차 아스라이 스러져갈 때, 무참한 마음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소설이 아닐까. 때로는 대책 없는 낙관이 위안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문학동네 해외문학팀 부장 이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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