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狼狽)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뒷다리가 없는 ‘낭(狼)’ 이라는 이리와 앞다리가 없는 ‘패(狽)’ 라는 이리, 이 두 마리는 서로의 다른 특성에 기대 공생한다. 그러다 이 둘의 마음이 맞지 않아 떨어지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치닫는다. 이런 순간을 보고 우리는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 아라리오 서울은 백현주(33)작가의 두번째 개인전 ‘낭패 狼狽 wolf and wolf’를 9일부터 개최한다. 전시는 1층과 지하 전시장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지하 전시장의 설치작품 ‘낭패’는 ‘자살세포’시리즈의 하나로, 전시 첫 날 무너질 운명을 타고났다.
나무와 스티로폼으로 높은 탑처럼 쌓아올린 ‘낭패’가 와르르 무너져야 진정한 전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관객 참여 작품으로 무너트린 ‘낭패’를 관람객들이 나무토막, 테이프, 케이블 타이 등으로 구조물을 다시 쌓아올린다. 작가는 매일 변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관람객과 관람객이, 관람객과 작가가 서로에게 ‘낭’과 ‘패’가 된다”는 것이 백 작가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1층 구석에는 운동장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동영상이 나온다. 상기된 얼굴과 상반신만 찍힌 이 영상의 진짜 정체는 지하층에 가야 알 수 있다. 지하에는 ‘2인 3각’ 혹은 ‘3인 4각’을 하고있는 이들의 하반신을 보는 순간 또다른 ‘낭패’를 만난다. 작가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서로가 관계를 맺고 노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월 26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