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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병아리’ 언론인들의 경고
“선배, 제가 요즘 ‘알바’를 하는데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어요.”

언론사를 퇴사한 한 후배 여기자의 신세 한탄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그는 휴대폰 너머로 자신의 전 직장 관련 푸념을 늘어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앞으로 다시 일하게 되면 저의 생존만 생각할 거예요. 사회 정의? 소신? 다 필요 없어요. 그건 사치예요.”

젊은 데다 미혼인 그녀에게 아직 앞길은 구만리같아 보였다. 기자가 되면서 품었을 꿈과 포부는 아직도 그녀 정체성의 대부분을 규정하고 있을 터. 과연 무엇이 그를 돌변하게 한 것일까.

그녀를 변화시킨 건 현실이었다. 당장 기자를 그만두고 백수로 살아보니 딱히 밥벌이할 방도가 없었다 한다. ‘언론에 넌더리가 난다’며 박차고 나간 그녀가 다시 이 업계로 돌아오려면 많은 것을 내려놔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생존일 것이다.

이어진 그녀의 알바 생활 이야기는 처절했지만, 화려했다. 논술 과외로 알바를 시작한 그녀는 어느날 식당 설겆이 알바에 나섰다가 ‘지옥’을 경험했다고 한다.

“선배, 저는 기자하면서 최저시급 1만원 요구하는 노동계를 납득 못했거든요. 그런데 설겆이 알바 이틀만에 시급 1만원도 적다는 걸 체감했어요.”

5시간 동안 딱 30분의 식시시간 외에는 끝없이 그릇을 닦았다고 한다. 한때 그녀가 즐겼을 대기업 계열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의 어두운 면을 그제서야 봤다고 한다.

지옥으로 딱 이틀 출근한 뒤 앓아눕고 수목금 3일과 주말 2일을 쉰 다음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고난이 그녀를 채찍질했다. 용케도 그녀는 다음 알바 자리로 화장품 포장일을 구했다고 했다.

눈물을 쏟으며 전하던 후배의 기막힌 이야기는 그날 이후 불시에 종종 떠오른다. 그녀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였고, 언론의 이야기였다. 또한 사회와 국가의 이야기이고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한 신문사 수습기간 퇴사자에게서 그 후배의 그림자를 발견한 건 아마 우연일 것이다. 그 여성 퇴사자는 온라인에 올린 글에서 그 후배처럼 한국 언론의 진정성에 여러 번 의문을 표시하더니 앞으로는 ‘돈이나 많이 버는 일’에 주력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 한 언론사는 최종합격자 통보 한 시간 만에 일부에게 합격 취소 전화를 해 물의를 빚었다. 합격 취소된 한 지원자는 인터넷 게시판에 “언론 자체에 정이 떨어진다. 오랫동안 꾼 꿈인데 이제는 놓을 때가 된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불거진 ‘기레기’ 논란으로 언론인의 사회적 위신은 추락한 지 오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 견제나 정의 구현이라는 언론의 존재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언론의 존재는 세상에 긴요하다. 지금의 언론계는 최근 언론 초년병들이 꿈을 접어가면서까지 언론을 향해 던지고 있는 메시지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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