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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의 역습①] 서울에는 ‘맹수’ 152마리가 산다
-서울시내 들개 최소 152마리…꾸준히 번식
-서식지도 북한산 등 4개구→9개구로 확장
-먹이 찾아 주택가 방황…주민 공포 떨게 해
-서울시ㆍ중앙정부 입장 달라 관리도 곤란
-전문가 “반려동물 유기행태 근절해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모(27) 씨는 지난 1일 동네 뒷산에서 운동을 하다 봉변을 당했다. 갑자기 크고 비쩍 마른 들개 2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나타난 것이다. 이 씨는 금세 달려들듯 짖어대는 들개들을 보자 식은 땀이 절로 났다. 때마침 주변을 지나던 등산객 무리가 없었다면 아찔한 경험을 할 뻔 했다. 이 씨는 “몇 사람이 등산스틱으로 위협하는데도 (들개들은)쉽게 도망가지 않았다”며 “혹시 마주칠까 싶어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내 야산과 재개발구역 등에서 들개 무리가 출몰하며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시ㆍ구 차원에서 매년 포획하고 있으나 개체 수와 행동반경은 계속 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내 야산과 재개발구역 등에서 ‘야생화’된 들개가 나타나며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사진=123RF]

15일 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도심 야산 등에 서식하는 들개 수는 152마리 이상이다. 이 가운데 북한산을 끼고 있는 은평구와 강북구 등에만 약 85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서식지를 계속 옮기는 데다가 번식 속도도 빨라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다.

번식 속도만큼 서식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당초 산이 많은 은평구, 관악구 등 4개구에 살고 있다고 파악됐지만 최근 종로구, 성동구 등 모두 9개구에서 들개 민원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시는 무분별한 반려견 유기가 들개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약 10년 전 은평뉴타운 사업 등 산 밑 주택가를 재개발하는 공사가 본격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이 이주하며 버린 반려견이 살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 떠돌이 방견(放犬)이 됐다. 이 방견이 새끼를 낳아 몇세대를 거치면 공격적인 야생 들개가 된 것이다.

들개는 보통 2~8마리가 무리지어 다닌다. 잡식성으로 산 속에서 먹이를 찾아 연명한다. 문제는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주택가와 공원 등에 내려와 주민들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음침한 모습으로 사람을 경계하며 짖어대는 들개는 ‘맹수’에 가깝다. 작년 12월에는 관악구 낙성대동 구민운동장에서 새끼를 둔 어미 들개가 겁에 질린 70대 노인 발목을 물기도 했다.

시는 피해를 막기 위해 포획을 하고 있다. 지난 2011~2016년간 모두 211마리 들개를 잡았다. 올해도 지난달 기준 종로구와 은평구에서 각각 9마리, 8마리 등 모두 20마리를 포획했다.

포획에는 포획틀과 마취총, 블로우건 등을 동원한다. 현행법상 야생동물로 취급되지 않아 사살 아닌 생포만 가능해서다.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시 평가다. 시 관계자는 “경계심이 많은 들개들은 포획틀에 접근하지 않는다”며 “마취 또한 발현시간(20~30분)이 길고 산이라는 특성상 추적도 어려워 효과가 낮다”고 말했다.

시는 이에 지난 2013년, 올해 1월 등 2차례 환경부에 정부차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들개를 법상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ㆍ고시하는 방안 등을 건의했다. 야생화된 동물이 되면 멧돼지처럼 포획 시 총포 등의 사용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멧돼지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정도가 심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아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들개 문제는 결국 시민의식 부재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들개도 어찌보면 무책임한 일부 사람들의 희생양”이라며 “반려동물 유기행태가 줄지 않는다면 들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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