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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두 번 죽는 미술가들
요즘 원로미술가들은 사후 그림에 부과될 상속세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거래총액은 2007년 호황기처럼 회복되었지만 거래량은 그대로다. 이는 작품점당가가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 작품가가 올랐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미술가들이 세상을 뜨면 세무당국이 유작을 파악해 상속세를 부과하는데 작품가가 전체적으로 오르다보니 상속세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다.

상속세의 경우 납기 내에 세금을 납부하려면 작품을 급하게 처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술품의 속성상 판매가 쉬운 것도 아니고 호가와 실거래 가의 차이도 많다. 또 세금 때문에 급매물로 나올 경우 시장은 최대한 싸게 사려한다. 사정이 이러니 당장 현금이 없는 경우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가 B의 유족은 선친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등록해 당장 세금을 모면했지만 매달 미술관운영비마련에 전전긍긍이다. 화가 K의 유족은 상속세를 못내 작품을 압류 당하자 미술과 관련 없는 공익재단에 기증해 세금지옥에서 벗어났다. 화가 N의 경우 급전을 빌려 세금을 냈지만 결국 이자 때문에 남은 그림도 남의 손에 뿔뿔이 흩어졌다.

미술품은 기호에 좌우되는 특성상 매우 팔기 어려워 납기 내에 상속세납부가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하고 그래서 작품을 압류당하기도 한다. 법률상 관할 세무서장은 연부연납과 물납을 허가할 수 있지만 미술품이나 문화재 상속에 적용된 예는 아직 없다. 세금 부과방식도 차별적이다. 그림에 공시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경매 등 거래이력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과하지만, 작품기증 시에는 가격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세금감면을 꺼린다. 이렇게 기증과 상속의 경우가 정반대다.

그깟 상속세가 얼마나 되길 래 그러냐하겠지만 이름이 제법 알려진 작가의 경우 1점당 1억만 쳐도 유작이 50점이면 50억에 이른다. 기본공제와 상속공제를 받아도 약 4~5억의 세금이 나온다. 여기에 살던 집과 화실 등 부동산이라도 있다면 상속세는 훌쩍 10억 원을 넘어선다. 물론 6개월 이내에 자진신고 해 10%정도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기한을 넘기면 가산세가 붙는다. 그런데 재산은 팔리지 않은 작품뿐이고 그래서 작품들이 헐값에 흩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미술작가들의 경우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 또는 물납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는 문화적 재화를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하는 동시에 우리문화를 보존하고 미래의 문화유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기증받아 보존할 만한 가치를 엄정하게 평가해야한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루브르의 베르메르의 작품 <레이스 짜는 여인>은 로스 차일드가문이 상속세로 납부한 그림이다. 1985년 개관한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상속인들이 상속세를 ‘대물변제’(Dation) 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우리도 이런 제도의 도입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평생을 문화예술의 발전에 헌신한 미술가들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풍요로운 문화유산 속에 행복할 수 있는 데 무엇 때문에 망설인단 말인가.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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