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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의료계 ‘AI 열풍’ 누구를 위한 것인가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해보도록 하자. 가족 중에 한 명이 암 진단을 받고 해당 암분야 최고 명의로 정평이 나 있는 전문의와 IBM의 암 치료 전문 인공지능 서비스인 ‘왓슨’(Watson for Oncology) 중 한 쪽이 제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이러한 ‘단순한’ 질문은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다. 아무리 명의라도 암을 진단할 때 혼자가 아닌 동료 의료진들의 의견을 모아서 제안할 것이고, 왓슨 역시 출적된 데이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의료진들의 의견도 함께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왓슨을 처음 도입한 한 대학병원의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문의들의 판단과 왓슨의 판단이 다른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왓슨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인간만이 가지는 오랜 경험에서 오는 ‘직관적인 판단’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왓슨에게 더 신뢰를 부여한 것이다.

의료계에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말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처음으로 ‘왓슨’을 도입한 이래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 가톨릭대병원 등에서 왓슨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해 과열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의료계의 이러한 왓슨열풍은 과거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도입과 로봇수술 시스템 ‘다빈치’ 도입 열풍과 비슷하다.

왓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병원은 기존의 ‘빅5 대학병원’ 등에 비해 암 환자 유치율이 낮은 지방의 대학병원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빅5’와 서울소재 대학병원들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손잡고 질병 진단과 치료를 위한 의료 AI 플랫폼 개발에 나섰고 서울아산병원은 AI로 폐, 간, 심장 질환 영상을 판독하는 ‘인공지능 의료영상 사업단’을 올초 출범시켰다. 삼성서울병원은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는 AI를 개발하고 있고 분당서울대병원은 인공지능을 접목한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HIS)을 개발하고 있다.

연세의료원도 2020년 개원 예정인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을 최첨단 디지털 병원으로 만들면서 인근 부지를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이 융합된 최첨단 의료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고려대의료원도 SK텔레콤과 손을 잡고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는 전초를 마련 중이다.

문제는 병원마다 떠들썩하게 천문학적인 투자를 내세우며 환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아직까지 환자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는지 증명된 팩트는 없다는 점이다. 자칫 글로벌 의료기기업체와 병원의 수익추구가 맞물려 관련 시스템을 개발한 업체의 시장선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로봇수술이 기존 개복수술이나 복강경수술에 비해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부담은 훨씬 높지만 그 효과에 있어서 뚜렷한 비교 우위가 입증되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고급 의료 서비스의 보편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운영 방향이 잘못 설정된다면 그 충격은 훨씬 클 수도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안된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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