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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원이면 피서”…더위에 쫓긴 노인들 ‘패스트푸드점’으로
“에어콘 빵빵…저렴하고 시원”
아메리카노 한잔에 하루종일
일부는 “그마저도 부담스럽다”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부채질


“1000원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싸고 시원하고 얼마나 좋아.”

최고 기온 30도를 웃돌며 때이른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19일 오후 2시께, 서울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 구석에는 커피 한잔 시킨 채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일부는 지팡이를 짚고 조용히 창문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풀가동’되는 패스트푸드점으로 ‘피서’온 노인들이었다. 이경운(89) 씨는 “다른 곳보다 커피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시원해서 자주 오는 편”이라며 “아이스크림도 1000원 채 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곳을 오가면서 젊은이들 구경도 하니 시간 보내기 좋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더위를 피하려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땡볕인 공원이나 답답한 경로당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일주일에 두번 이상 패스트푸드점을 들린다는 박모(75) 씨는 “올해는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벌써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원한 곳을 찾고 있지만 여기만큼 가격이 저렴하고 시원한 곳이 없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지출하는 비용마저 부담스러워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더위를 견디는 일부 노인들도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는 수십명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방법으로 더위를 쫓았다. 그늘진 곳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지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은 피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 경기 의정부에서 왔다는 박형섭(78) 씨는 “날씨가 더우면 시원한 곳에 들어가고 싶지만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은 돈을 내야하니 부담”이라며 “탑골공원처럼 그늘이 있고 앉을 곳이 마련된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노인들은 에어콘이 가동되는 패스트푸드점을 가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가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71) 씨는 “커피 한잔만 시키고 앉아있으면 젊은 직원들이 눈치를 주며 나가라고 하는 것 같아서 가기가 꺼려진다“며 “공원은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아무도 통제하지 않으니 편하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는 노인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무더위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16일부터 주민센터, 경로당, 복지회관 등 3260곳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쉼터가 그저 ‘불편한 선택권’에 불과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권장엽(68) 씨는 “지자체는 무더위 쉼터로 가라고 하지만 공간이 좁거나 냄새가 나는 등 불편하다”며 “눈치보이고 통제받는 느낌이어서 쉼터로 가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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